강물에 휩쓸려간 학원생을 구하려다 숨진 30대 태권도 학원 관장 ㄱ씨를 의사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ㄱ씨는 당초 의사자로 지정됐다가 숨진 학원생에게 구명조끼를 착용시키는 등의 보호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그 지정이 취소됐는데, 법원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 학생을 구하려 한 ㄱ씨의 행동은 사회적 귀감이 될 만하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강동혁)는 사망한 ㄱ씨의 유족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사자 인정 취소 및 보상금 환수 처분의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19일 밝혔다.
ㄱ씨는 2016년 5월 강원도에 학원생들과 수련회에 갔다가 강에서 물놀이하던 중 학원생 3명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강에 뛰어들었다. ㄱ씨는 학원생 2명을 구했으나 나머지 1명을 구하지 못하고 함께 숨졌다. 그해 12월 보건복지부는 ㄱ씨를 의사자로 인정하고 유족에게 보상금 2억여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숨진 학원생 ㄴ의 부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ㄱ씨에 대한 의사자 인정을 취소하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앞선 민·형사 재판에서도 ㄱ씨가 학생들에게 구명조끼 등 안전 장비를 착용시키지 않아 보호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ㄴ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법원의 조정권고에 따라 ㄱ씨에 대한 의사자 인정을 취소하고 보상금도 환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ㄱ씨의 유족은 재차 소송에 나섰다. 쟁점은 보건복지부가 ㄱ씨의 의사자 취소 사유로 내세운 ‘의사사상자법 제3조 제2항’이 ㄱ씨에게 적용되는지였다. 해당 조항은 자신의 행위로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다가 사망한 경우, 의사자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ㄱ씨가 이 조항의 적용을 받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입법 목적을 보면 자신의 고의나 중과실로 위험해진 사람을 구하다가 사망한 경우에 의사자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맞다”며 “ㄱ씨의 과실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ㄱ씨의 고의나 중과실이 ㄴ의 위험에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ㄱ씨가 학생들에게 안전 장비를 착용시키지 않는 등 잘못을 했더라도, 이후 자신의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학원생들을 살리기 위해 물에 뛰어든 행위는 자기희생적 행위로 평가할 수 있고 사회적 귀감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 ㄱ씨의 사망으로 유족의 생계가 어려워졌다는 점도 고려됐다.
의사상자 제도는 타인을 구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의로운 이들의 희생을 예우하고 지원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제도 시행 이후 50여년간 약 700명이 지정되는 데 그치는 등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20년에는 흉기를 든 조현병 환자에게서 간호사들을 대피시키다 숨진 고 임세원 교수를 보건복지부가 의사자로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이후 법원은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현재 국회에는 경찰서장도 의사자 인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의사자 인정 신청은 당사자와 지자체장만이 할 수 있는데, 사안 특성상 지자체장보다 경찰서장이 의사상자 발생 사실을 먼저 파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의사상자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결과뿐만 아니라 그 사유와 권리구제 방법을 안내하도록 하는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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