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스토커가 “안 만나줘서 정신병, 치료비 내놔”…이게 현실이다

등록 2022-09-20 07:00수정 2022-09-20 17:39

추모행렬 이어지는 신당역
스토킹 피해 여성들 목소리
19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성 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의 장소’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이날 한 여성은 ‘여성이 행복한 서울, ‘여행’ 화장실’이라고 붙은 표지판에 ‘거짓말’이라는 문구를 붙이고 떠났다. 고병찬 기자
19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성 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의 장소’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이날 한 여성은 ‘여성이 행복한 서울, ‘여행’ 화장실’이라고 붙은 표지판에 ‘거짓말’이라는 문구를 붙이고 떠났다. 고병찬 기자

“13살 땐 가까운 가족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버스를 타면 중년 남성들이 신체접촉을 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대학에 가선 연인에게 스토킹을 당했습니다. 삶의 과정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성폭력에 노출됐죠. 저는 운이 좋아 그저 안 좋은 경험으로 끝났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겪는 일들이 결코 한두명만의 특수한 경험만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19일 정오께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 앞에 설치된 ‘추모의 벽’ 앞에 강다운(24)씨는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던 여성 역무원이 직장 동료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끙끙 앓아야 했다고 했다. 2016년 강남역, ‘엔(n)번방’, 스토킹 살인 김병찬 사건까지 아무리 반복돼도 도무지 바뀌지 않는 현실에 눈도, 귀고 모두 닫고 싶었다고 했다.

“혼자 끙끙 앓다가 이곳에 와서 피해자에게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3살 사촌 동생 생각도 났습니다. 제가 그 나이 때부터 겪던 성폭력 등을 사촌 동생은 겪지 않았으면 한다는 마음뿐입니다.” 강씨는 오후 1시13분까지 이곳을 지키다 자리를 떠났다.

19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성 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의 장소’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이날 한 여성은 ‘여성이 행복한 서울, ‘여행’ 화장실’이라고 붙은 표지판에 ‘거짓말’이라는 문구를 붙이고 떠났다. 고병찬 기자
19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성 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의 장소’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이날 한 여성은 ‘여성이 행복한 서울, ‘여행’ 화장실’이라고 붙은 표지판에 ‘거짓말’이라는 문구를 붙이고 떠났다. 고병찬 기자

19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성 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의 장소’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한 여성이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19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성 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의 장소’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한 여성이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지난 14일 여성 역무원이 평소 자신을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에게 살해당한 신당역 여성 화장실 들머리에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조화와 각종 음식이 쌓이면서 서울교통공사는 이날 오후 3시36분에 조화를 올려놓을 수 있는 책상을 1개에서 2개로 늘렸다.

19일 낮 이곳을 찾은 여성들은 각자가 일상에서 겪었던 피해 경험들을 털어놓으며 “누구나 비슷한 일을 겪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강씨는 지난 2018년에 사귀었던 전 연인에게 당했던 6개월간 당했던 스토킹 피해를 털어놨다.

당시 전 연인은 다시 만나달라며 수시로 연락을 하고, 강씨가 만나주지 않아 정신병이 심해졌다며 병원비를 내라고 했다 한다. 강씨는 “당시엔 같은 학교에서 계속 만날 수밖에 없어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친한 친구에게 언제까지 연락이 없으면 확인을 하거나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말하기까지 했다”며 “결국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교환학생을 가야만 했다. 절대 한두명의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직장인 이지아(24)씨는 스토킹을 당해 공론화를 통해 대학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학교 쪽에서 “일을 크게 만들지 말자”고 말하면서 위협을 느낀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씨는 “스토킹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고,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불법촬영, 스토킹 등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여성혐오가 배경에 있다고 본다”고 했다.

직접적인 스토킹 피해를 본 적이 없더라도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30대 직장인 ㄱ씨는 “우리 사회에선 남성들이 여성에게 좋아한다고 일방적으로 표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풍토가 만연한 것 같다. 이런 사건이 계속 벌어지니 법도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20대 대학생 ㄴ씨는 “대학 동아리에서 밥 한 끼만 먹었는데 계속 좋다고 연락이 온 경험이 있다. 어릴 때부터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말을 하듯이 일방적인 애정표현도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아전인수…“재판관님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요” 1.

윤석열 아전인수…“재판관님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요”

[속보] 윤석열 쪽 증인 국정원 3차장 “선관위, 서버 점검 불응 안했다” [영상] 2.

[속보] 윤석열 쪽 증인 국정원 3차장 “선관위, 서버 점검 불응 안했다” [영상]

[속보] 헌재, 윤석열 쪽 ‘한덕수 증인신청’ 기각…13일 8차 변론 3.

[속보] 헌재, 윤석열 쪽 ‘한덕수 증인신청’ 기각…13일 8차 변론

윤석열 “계엄 때 군인들이 오히려 시민에 폭행 당해” 4.

윤석열 “계엄 때 군인들이 오히려 시민에 폭행 당해”

공룡 물총 강도에 “계몽강도” “2분짜리 강도가 어디 있나” 5.

공룡 물총 강도에 “계몽강도” “2분짜리 강도가 어디 있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