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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표 모아타운’에 망리단길 세입자들 “우린 어디로?” 막막

등록 2022-09-22 07:00수정 2022-09-22 14:10

사업기간 짧은 ‘모아타운’
‘망리단길’ 세입자들 우려
마포구청이 ‘모아타운’ 공모에 신청한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커피하우스마이샤’에서 지난 15일 사장 김지석(51)씨가 커피를 만들고 있다. 이우연 기자
마포구청이 ‘모아타운’ 공모에 신청한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커피하우스마이샤’에서 지난 15일 사장 김지석(51)씨가 커피를 만들고 있다. 이우연 기자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커피하우스마이샤’ 사장 김지석(51)씨가 드리퍼에 천천히 물을 흘리자 26㎡(8평) 남짓한 카페에 고소한 향이 퍼졌다. 바로 맞은 편에 지난해 문을 연 6층짜리 카페 건물이 있었지만 손님들은 끊임없이 마이샤의 문을 열었다. “사장님 저번에 산 원두 맛있게 먹었어요. 전 딴데 눈길도 안 주고 있어요. 여기 커피만 마셔요.” 헬멧을 쓴 라이더 손님이 들어와 말했다.

마이샤가 위치한 곳은 최근 몇년 새 개성 있는 소규모 가게들이 생겨나며 ‘망리단길’이라는 별칭을 얻은 망원동 일대다. 주소는 합정동이지만 망리단길을 통칭하는 마포구 포은로에 있다. 다세대·다가구주택 사이로 33㎡(10평) 안팎의 음식점과 카페, 술집, 액세서리 공방, 꽃집 등이 들어서 있다.

‘핫플레이스’에 있는 카페지만, 사장 김씨의 얼굴은 어두웠다. 최근 망리단길에 오세훈 시장의 주택 공급 사업 ‘모아타운’ 개발 소식이 들려오며 거리는 어수선한 분위기다. 세입자 대책이 불투명한 사업이라 마이샤 카페를 비롯한 세입자들 사이에서는 “몇 년 내 대책 없이 쫓겨나게 생겼다”는 말이 돌고 있다.

‘모아타운’은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노후 저층 주거지를 하나로 묶어 개발하는 소규모 정비사업이다. 모아타운으로 선정되면 다가구·다세대주택 필지 소유자들이 개별 필지를 모아 블록 단위로 1500㎡ 이상 규모의 중층 아파트를 공동으로 개발하는 모아주택을 추진할 수 있다. 상반기에 실시한 첫 공모에서 14개 자치구 30곳이 신청해 21곳이 선정됐다. 최근 추가 공모에는 39곳이 신청해 오는 10월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 서울시는 침수에 취약한 반지하 주택이 밀집한 지역을 우선적으로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마포구청은 이번 추가 공모에 합정동 428지 일원 10개 블록을 신청했다. 약 1100가구가 해당되고 면적만 7만6000㎡이라서 사실상 재개발 사업 규모를 웃돈다.

마포구청이 ‘모아타운’ 공모에 신청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일대 거리. 이우연 기자
마포구청이 ‘모아타운’ 공모에 신청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일대 거리. 이우연 기자
모아타운 지정을 둘러싼 소유주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개발 이익을 기대하는 소유주들은 준비위원회를 꾸려 모아타운을 추진하고 있고,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소유주들은 반대 동의서를 모아 구청에 민원을 넣고 있다.

문제는 이곳에서 살거나 가게를 운영하는 세입자들에 대한 별다른 보상책이 없다는 것이다.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에는 손실보상에 대한 규정이 없다. 재개발의 경우 세입자들에게 임대주택 마련과 주거이전비·이사비를 지원한다.

이날 카페 마이샤 단골손님들의 대화 주제도 자연스레 ‘모아타운’으로 모였다. “여기 합정동 근처는 아직 젠트리피케이션이 오지 않아서 권리금도 1000만원대로 저렴해요. 그래서 몇년 전부터 홍대나 이태원에서 밀려난 젊은 자영업자들이 개성 있는 작은 가게들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이번 정책으로 결국 죽어나는 건 돈 없는 우리 같은 세입자죠.” 사장 김씨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기도 광명에서 매주 이곳에 커피를 마시러 온다는 단골손님 최우석(40)씨는 “원두를 강하게 볶는 강배전 방식의 드립커피를 이만큼 잘하는 곳이 없다. 이렇게 특색 있는 가게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은 모아타운으로 선정된다면 이주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짧은 것도 걱정이다. 모아타운은 평균 8∼10년이 걸리는 재개발과 다르게 정비계획 수립, 조합추진위 승인, 관리처분계획 인가 등의 절차가 생략돼 사업소요 기간이 2∼4년 걸릴 전망이다.

합정동에서 독립책방 ‘로우북스’를 운영하는 배인영(33)씨는 “지난해 책방 문을 열고 이제 단골손님이 생기며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인근 청년 상인들은 코로나로 인한 손실을 이제야 회복해가면서 동네 문화를 가꿔나가고 있는데 졸속으로 개발이 추진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개월 전 이곳에 스튜디오를 열었다는 사진가 이상윤(30)씨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좋았고, 상인들도 주민들과 어우러진 분위기여서 이 동네를 골랐다”며 “나가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을 알아봐야겠지만, 이곳마저 획일화된 아파트 단지가 된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했다.

‘모아타운’ 대상지 선정을 기다리고 있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독립책방 ‘로우북스’에서 지난 15일 사장 배인영(33)씨가 책을 정리하고 있다. 이우연 기자
‘모아타운’ 대상지 선정을 기다리고 있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독립책방 ‘로우북스’에서 지난 15일 사장 배인영(33)씨가 책을 정리하고 있다. 이우연 기자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모아타운 기대감으로 이미 전월세가 상승해 세입자들이 쫓겨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망원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모아타운 신청지에 ‘부동산꾼’들이 들어와 집값을 올려버리니 돈 없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집을 얻을 수 없다”며 “지금 사는 세입자들도 대부분 전·월세가 저렴해 들어온 젊은 층인데 모아타운 지정으로 사실상 다 쫓겨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재개발 기간이 왜 길겠냐. 여러 검토와 주민 설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며 “모아타운 같은 중간 절차를 다 생략하는 개발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돈 없는 세입자뿐”이라고 했다.

세입자 대책이 없다는 지적에 서울시와 시의회는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의무 규정이 아닌 데다가 집주인에게 유리한 방식이다. 지난 20일 서울시의회 주택공간위원회를 통과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조례 개정안’(민병주 국민의힘 시의원 발의)은 사업시행자가 기존 주거·상가 세입자의 이주비와 영업 보상금을 내주면 법적상한용적률까지 용적률을 완화하거나 공공임대주택 건립 비율을 축소하는 인센티브를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서울시 모아주택계획팀 관계자는 “이달 28일 본회의를 통과해 조례를 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손실보상을 의무로 한다면 사업성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용적률 완화 같은 인센티브로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모아타운 사업은 사실상 재개발과 다름없어 세입자의 입주권이나 이주비와 관련된 제도을 먼저 만든 다음 사업을 시행해야 하는데 이제 와서 조례를 만든다는 것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세입자 보상 인센티브로 용적률을 완화한다는 것은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식의 정책이다. 취약계층인 세입자를 위한 재원 투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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