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이사가 9월20일 임시 사무실에서 새 인권센터 건립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인권단체를 스타트업처럼 육성할 수 있을까. 인권운동에만 30년 넘게 매진해온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는 “새 인권센터는 정부와 기업에서 독립된 스타트업 인권단체들을 육성하는 ‘인큐베이팅 센터’, 활동가와 시민을 연결해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는 ‘연결센터’가 될 것”이라며 꿈에 부푼 모습이었다.
지난 20일 서울 은평구 인권재단 사람 임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오는 29일 착공식을 앞둔 새 인권센터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혐오가 출입할 수 없는 자유의 공간, 치유의 공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박 이사는 코로나19 이후 인권운동이 질적으로 달라지면서 걸맞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은평구 신사동에 새 인권센터를 만들기 위해 나섰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고, 인권단체 활동도 거대 담론 위주가 아니라 단발적 ‘이슈’ 중심으로 빠르게 모였다가 해산하는 등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며 “지금은 인권운동의 대전환기”라고 강조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새 인권센터는 작은 인권단체들을 위한 사무 공간과 이슈 기반 활동가들의 임시 공간을 제공하고, 온라인 기반 활동이 가능한 다목적홀을 마련하는 등 설계에 신경을 썼다. 새 인권센터는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에 연면적 170평 규모로 세워질 예정이다.
2023년 8월 완공을 목표로 한 새 인권센터는 기존 마포구 성산동의 인권센터 ‘인권중심 사람’을 대체할 예정이다. ‘인권중심 사람’은 지난 2013년 4월, 시민 2914명이 약 10억원을 모아 개관한 곳으로 인권재단 사람의 사무실이자, 인권 활동 지원을 위한 기지로 활용됐다. 그러나 성산동의 3층짜리 소규모 단독주택을 재단장한 것이어서 다양한 인권단체들을 위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박 이사는 새 공간이 갈수록 약화되는 인권운동의 ‘연대성’을 강화할 수 있길 기대했다. “인권운동도 전문성이 강화되면서 칸막이 현상이 심해졌다”는 그는 “‘차별금지법’도 결국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등이 겪는 차별의 문제가 다르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처럼 다양한 의제를 가진 ‘스타트업’ 인권단체들이 모이면 차별금지법과 같은 공동의 투쟁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포부는 크지만 상황이 녹록하지만은 않다. 최근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건축비가 2억원 이상 크게 오르면서 은행 대출을 받아도 약 5억원의 건축비가 모자란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더는 지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정권 교체 이후 시민사회 활동에 대한 정부의 감시와 압박이 강화되고, 소수자를 향한 혐오는 한층 커지는 상황에서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혐오로부터 안전한,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민간 독립 인권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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