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2023년 장애인 활동지원 수가 현실화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장애인단체 등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처음에는 분식집에서 김밥마는 일보다 돈을 더 준다고 해서 일을 시작했어요. 주부로 아이 두 명 키우려면 시급 몇백원이라도 더 주는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15년이 지난 지금 단순히 돈 때문에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지낼 수 있도록 일상생활 속 모든 일을 지원하는 가치 있는 일이에요.” (15년차 장애인활동지원사 신경숙씨∙54)
2007년 지금의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가 ‘장애인활동보조제도’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됐을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는 활동지원사 신경숙씨. 그는 “1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부는 ‘활동지원사들은 최저임금 수준만 받아도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장애인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려면 장애인과 모든 일상을 함께하는 활동지원사의 노동권도 함께 보장해야 하지만,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정부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활동지원사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씨는 활동지원 서비스를 두고 “장애인의 삶과 밀착해 장애 유형에 맞는 종합적인 서비스를 지원하는 전문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지난달 17일 <한겨레>와 만난 4명의 활동지원사들은 “‘최저시급 보다 조금 더 주는’ 수준의 현 활동지원서비스 임금 체계에선 활동지원사도, 서비스를 지원받는 장애인도 모두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딱 최저임금만큼 오르는 수가…기관-활동지원사 ‘제로섬’
정부는 지난 8월 내년도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단가를 1만5570원으로 지난해 1만4805원에서 5.2%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뜻 최저임금(9620원)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전체 예산 규모로는 1조9919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정부 발표 뒤, 장애인활동지원사들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서비스에 대한 금액이 활동지원사에게 온전히 가지 않고, 서비스를 지원하는 기관과 나눠야 하는 ‘제로섬’이라서다. 장애인 활동지원 단가 운영 구조를 보면, 단가의 25% 이내는 자립센터 등 서비스 지원 기관 운영비로 사용되고 나머지 75% 이상은 활동지원사 인건비로 쓰인다. 활동지원사 단체들은 이를 기준으로 활동지원사가 주 15시간 이상 노동할 경우 인건비는 △최저시급(9620원) △주휴수당(2000원) △연차수당(730원) △유급휴일 수당(653원) △4대 보험(1355원) △퇴직충당금(1084원) 등 1만5442원으로 단가의 99.2%를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서비스 지원기관은 나머지 0.8%인 128원으로 운영을 해야 한다. 활동지원사들의 임금을 보장하기에 정부가 책정한 예산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고미숙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 조직국장은 “그동안 매번 최저임금 인상 폭만큼 수가가 올랐다. 이번에도 정부가 내놓은 1만5570원은 딱 최저시급 수준 기본급에 주휴수당만 받으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직장인들처럼 사고가 발생하면 유급휴가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하고, 명절수당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지난 8월 ‘2023년 장애인활동지원 수가 현실화를 위한 전국공동행동(전국공동행동)’은 정부 예산안을 두고 “활동지원사의 임금을 보장하면 기관 운영이 어렵고, 기관 운영을 생각하면 활동지원사의 임금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정부의 인상안”이라고 비판했다.
쪼개기 계약에 잦은 퇴사…활동보조 서비스 질에 직결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활동지원사들은 서비스 지원 기관으로부터 연장근무 등 추가 수당 지급 회피를 위한 ‘쪼개기’ 근로계약 등을 강요받기도 한다. 3년차 활동지원사 ㄱ(40)씨는 “현재 발달장애인 한 분을 13시간 활동지원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근로기준법 상으로는 8시간이 넘는 근무에 대해선 연장근무 수당을 받아야 하지만 센터에서는 연장근무 수당 지급을 회피하기 위해 나머지 5시간을 다른 센터와 근로계약서를 쓰라고 했다”고 말했다. 낮은 시급은 활동지원사들을 장시간 노동환경으로 내몬다. ㄱ씨는 “처음에는 일주일에 26시간만 일했지만, 최저시급으로 도무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일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있다. 따져보면 일주일에 50시간 넘게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활동지원사의 불안정한 노동환경은 인력 수급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장애인들이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재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중증 장애인일수록 애초에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힘들고, 노동강도가 워낙 세니 활동지원사가 그만 두는 경우도 잦다”며 “언어장애 등 의사소통이 힘든 장애인의 경우 활동지원사가 오래 일하면서 의사소통을 다 알아듣고 일상생활을 지원할 수 있는데, 인력이 자주 바뀌면 매번 적응하느라 지원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했다.
활동지원사 단체들은 정부가 내년 활동지원서비스 단가 인상 등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속해서 촉구하고 있다. 전국공동행동은 △2023년 활동지원서비스 단가 1만7500원 △장애인∙활동지원사∙서비스 제공 기관 참여하는 ‘장애인 활동 수가 결정위원회’ 구성 △법정 수당·기관 운영비 전액 수가 반영 △인건비·기관 운영비 분리 산출 및 지급 △감염 및 재난 등 긴급 상황에 따른 임금 보전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