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변인이 언론 인터뷰 과정에서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대해 “종북세력이 활동할 가능성이 많다”고 언급한 것은 누리집 운영자의 명예를 침해한 것이라 위자료 지급 대상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8-1부(재판장 윤웅기)는 오늘의 유머 운영자 ㄱ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국정원은 2009년 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오늘의 유머’ 등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글을 작성하고, 커뮤니티 글에 추천 또는 비공감을 누르는 방식으로 여론을 조작했다. 오늘의 유머는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진보 성향 커뮤니티로 분류돼 국정원 댓글 조작 활동의 주요 표적이 됐다.
ㄱ씨는 국정원의 댓글 조작 활동으로 오늘의 유머 게시판의 평판 시스템이 무너지는 등 커뮤니티 운영에 손해를 입었다면서 2015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오늘의 유머가 종북세력이나 북한과 연계된 인물들이 활동할 가능성이 많은 공간으로 본다”는 2013년 1월 당시 국정원 대변인 인터뷰에 대해서도 이씨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이씨 주장을 전부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국정원의 사이버활동으로 오늘의 유머의 게시물 시스템 붕괴 등 이씨의 재산적 손해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국정원 대변인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해서도 “오늘의 유머가 ‘종북사이트’라는 오명을 썼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을 뒤집고 국정원 대변인의 인터뷰 내용은 명예훼손이 맞다며 국가가 위자료 1천만원을 줘야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댓글 조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질 무렵이라 일반인은 대공 업무를 관장하는 국가기관 대변인의 종북 관련 발언을 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남북 분단 사회에서 ‘종북’이란 표현이 낳는 부정적 인상을 고려하면 ㄱ씨가 다년간 커뮤니티 운영 등을 통해 쌓아 올린 명성이 침해됐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게시물 시스템 붕괴 주장에 따른 재산상 손해배상 등은 1심과 같은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지시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18년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의 실형을 확정받았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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