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선생 서거 40주기였던 2015년 8월17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장준하공원에서 아들 장호권씨가 발언하고 있다. 파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유신헌법에 반대하다 박정희 정권에서 ‘긴급조치 1호’ 최초 위반자로 옥고를 치른 고 장준하 선생 유족에게 국가가 7억8천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단이 항소심에서도 유지됐다.
서울고법 민사21부(재판장 홍승면)는 고 장준하 선생의 자녀 5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 판결에 불복한 정부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13일 밝혔다. 앞서 1심을 심리했던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당시 재판장 김형석)는 2020년 5월 정부가 장 선생의 유족에게 7억8천여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장준하 선생은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정을 위한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다 이듬해 1월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장 선생 사건을 심리한 비상보통군법회의는 기소 일주일 만인 1974년 2월1일 장 선생에게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했고, 이 판결은 6개월 만인 같은해 8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장 선생은 형 집행 도중인 1974년 12월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1975년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돼 타살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장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34년이 흐른 2009년, 장 선생의 장남 장호권씨는 재심을 청구해 2013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후 유족은 재심 무죄 판결을 토대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행위는 그에 대한 수사·재판·형의 집행을 당연히 예정하고 있다”며 “긴급조치 발령행위는 헌법과 법령에 위반되더라도 정치적 책임만 지고 긴급조치에 따른 개별 수사·재판·형의 집행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실제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정의 관념에 반하고 부당하다”고 밝혔다.
‘사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이던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유신헌법에 따른 긴급조치권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에 대해 민사상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후 이 판결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박근혜 대통령 국정운영 뒷받침 사례’로 포장돼 청와대에 제시됐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재판 거래’ 논란이 불거졌다. 이로부터 7년여 만인 지난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에 의한 불법적인 수사와 구금 등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며 과거 판례를 뒤집었다. 이날 항소심 판결은 바뀐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과감한 과거사 청산을 약속했으나, 당시 법무부는
이 사건 당시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법무부는 이날 항소심 결과에 대해 “판결문 검토를 거쳐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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