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5월 결혼을 앞둔 직장인 권아무개(30)씨는 최근 주식 앱을 열어보면 시름만 쌓인다고 한다. 5년간 직장 생활하면서 모은 돈을 삼성전자, 현대차, 네이버 등 국내 대기업 우량주 중심으로 투자했지만 최근 반토막 넘게 손해를 보고 있어서다. 투자한 돈을 빼서 결혼 자금으로 쓰려 했지만, 결국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권씨는 “남자친구도 결혼 자금으로 쓸 목돈을 안정적으로 장기 투자한다며 우량주에 투자했는데, 절반 넘게 손해 보고 있어서 도저히 못 뺄 것 같다”며 “마이너스 통장 이자 내는 게 낫겠다 싶어 일단 버텨보려 한다”고 토로했다.
1년새 코스피 지수가 30% 가까이 하락하면서 개미 투자자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특히 중장년층에 비해 자산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시장에 유입돼 투자 경험치가 낮은 2030 세대는 패닉 상태에 가깝다. 직장인 김아무개(30)씨는 “1500만원 손해 본 상황인데 당장 빼지도 못하고 주식 생각만 하면 암울해 미칠 지경”이라며 “주식을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토로했다.
이에 주식을 ‘손절’하고 금리 상승기에 맞춰 은행 예·적금으로 발길을 돌리는 ‘역 머니무브’ 움직임이 일고 있다. 13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 공시를 보면, 19개 시중은행 중 1년 정기예금 금리가 4.5% 이상인 상품만 4개였다. 전날(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3%로 올리는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점을 고려하면, 시중은행 예금 금리는 머지않아 5%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직장인 박아무개(28)씨는 “예금 금리 4%대 얘기가 나올 때 주식보다 예금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경제 상황을 한 치 앞도 예상하기 힘드니 시간 투자해 주식 공부할 게 아니면 안전하게 투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돈을 자유롭게 입출금할 수 있는 예·적금 상품인 ‘파킹통장’도 2030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26주간 납입 금액을 늘리며 저금하는 상품인 카카오뱅크의 ‘26주 적금’ 가입 고객은 지난 8월 말 기준 20~30대 비율이 약 52.7%를 차지했다. 케이뱅크의 파킹통장 ‘플러스박스’ 가입자도 지난 9월 초 기준 20~30대가 전체 중 52%였다.
주가 지수 하락과 고금리가 맞물리면서 ‘빚내서 투자’하는 청년층도 주식시장에서 대거 빠져나갔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주요 증권사 연령대별 신용융자잔고 현황’ 자료를 보면, 20~30살 신용융자잔고 금액은 지난해 말 5096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3210억원으로 37% 감소했다. 신용융자는 주식 매수에 필요한 투자자금을 증권사가 대출해주는 서비스다. 30∼40살 신용융자잔고도 같은 기간 2조9436억원에서 2조258억원으로 30% 넘게 줄었다.
은행 정기예금 규모는 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은행)의 정기 예·적금 잔액(법인자금 포함)은 760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말(654조9000억원)과 비교해 9개월여 만에 약 106조원이 불어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전까지 대출 이자를 내더라도 초과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만한 자산을 사는 등 대출을 통한 재테크 수요들이 많았는데, 이젠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최근엔 기존 대출을 미리 갚고 남은 현금을 안정적인 예금 상품에 투자하는 수요가 많이 늘었다”고 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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