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소수자부모모임 등 성소수자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1월1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성별정정 요건과 절차 국가인권위 진정’에 앞서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수술요건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성별정정을 신청하려면 소위 ‘판결이 잘 나오는’ 법원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거나, 성전환수술 요건에 대해서도 법원이나 판사마다 요구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아예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지어는 당사자들은 법원 사무관으로부터 ‘신체 일부를 찍은 사진을 제출하라’, ‘부모 동의가 없으면 형제·자매의 동의라도 받아 오라’는 요구까지 받습니다.” (류세아 트랜스해방전선 부대표)
20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기준에 관한 청문회’를 열고 법원의 판단 근거가 되는 대법원 예규인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 기준이 적절한지 트랜스젠더 당사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성전환수술 여부로 성별정정 허가를 따지는 기준이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다. 청문회에는 트랜스젠더 당사자인 류세아 트랜스해방전선 부대표, 최신영 법원행정처 가족관계등록과장,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은실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참석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당사자 진술인으로 나선 류세아 트랜스해방전선 부대표는 “성별변경을 원하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법원에서 인정하는 수술 기준’을 맞추기 위해 판결의 동향이나 각 법원의 성향을 파악해 신청을 준비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성전환수술 요건을 명시한 대법원 예규는 법령이 아닌 단지 규칙일 뿐이므로, 이를 해석하는 법원의 판단 또한 자의적일 수밖에 없고 이는 실제 생존의 문제로 맞닥뜨리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는 (법원의 판단 기준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고 했다. 이어 류 부대표는 “특히 성전환수술은 국내에서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시술하는 병원조차 극소수인 상황에서 수술을 강제해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도 법원은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트랜스젠더가 성별을 정정하려면 법원에 성별정정허가신청을 한 뒤 재판을 거쳐야 한다. 지난 2006년 대법원은 이 재판을 위한 판단 기준으로 대법원 예규인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제정했다. 이 지침 6조는 성전환수술 여부와 생식능력 상실 등을 ‘참고사항’으로 제시하지만, 실제 대다수 재판에서는 이를 ‘허가조건’으로 삼아 성전환수술이 성별정정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권·성소수자 단체들은 해당 조항이 트랜스젠더의 신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법원이 성별정정을 위해 성전환수술을 사실상 강제한다며 비판해왔다.
전문가들은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한 대법원의 성전환수술 요건을 삭제하고 성별정정을 원하는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교수는 “어느 누구도 건강권, 성적 자기결정권 등 수없이 많은 인권침해를 야기하는 대법원 예규 조항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법원은 ‘참고사항’인 예규를 외관적으로는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실질적으로는 당사자의 성별결정권을 보장 못 하게 만드는 ‘사악한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한 교수는 “법률 제정 권한을 갖는 국회가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성별정정을 원하는 당사자 앞에 놓인 사회적 장벽을 제거하는 법적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은실 교수도 “성별정정 목적으로 법원에서 보험 적용되지 않는 성전환수술을 강제하다 보니 신체적·경제적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다”며 “생식기 절제 수술 등 성전환수술이 성별을 정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 향후 어떠한 기준으로 성별정정을 허용할 것인가에 관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은 법원의 외부 성기 사진 제출 요구 등 재판 과정에서 겪는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진술했다. 이에 대해 최신영 법원행정처 가족관계등록과장은 “신청 서류가 접수되면 예규에 따라 정해진 서류를 제출해달라고 권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사진 요청했다는 건 담당자에게 문제가 있어 보인다. 관련 문제가 생기면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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