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서욱 전 국방부 장관(왼쪽 사진)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이 2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핵심 인물인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되면서 검찰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 핵심 인사들에 대한 직접 조사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에 대해 이원석 검찰총장은 신중론을 펼쳤다.
앞서 김상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지난 22일 새벽 “증거인멸 및 도망 우려가 있다”면서 서 전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 전 장관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피살 사건 때 군사통합정보체계처리(밈스·MIMS)에 기록된 서해 사건 관련 보고서 60건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또한 서 전 장관이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공모해 ‘월북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로 합동참모본부 보고서를 쓰도록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영장 발부 사유 가운데 ‘도망 우려’가 적시된 점을 주목한다. 국방부 장관 출신으로 주소지가 일정하고 출석 조사에도 응했다는 점에서 재판부의 설명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사건 피고발인으로 검찰 조사를 앞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전직 장관, 청장으로서 주소 및 주거지가 일정하고 수사에도 성실히 협력했다. 법원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구속영장) 발부 사유라니 이해가 안 된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영장발부 사유를 세세하게 따질 일이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 한 부장검사는 “통상 당사자끼리 말 맞추기가 염려되면 ‘증거인멸 우려’, 중형 선고 가능성이 있으면 ‘도망 우려’라고 사유를 들곤 한다”며 “혐의 성립에 다툼이 있을 경우, 쉽게 영장 발부를 하지 않는 추세를 생각하면, 혐의가 가볍지 않다고 본 셈”이라고 말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도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는 사실상 하나의 영장 발부 사유”라며 “서 전 장관의 혐의 가운데 보고서 삭제 지시가 있어 이미 증거인멸 우려가 인정된다고 봤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구속 여부를 떠나 서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유무죄는 다퉈볼 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밈스 삭제가 에스아이(SI·특별취급정보) 공유를 막기 위한 국방부 훈령에 따른 행위이고, 정보 판단이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공안 수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특히 서 전 장관의 첩보 삭제 행위는 국방부나 국정원 등에서는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정보 관리 방식이기 때문에 법정에서 혐의 여부를 다퉈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서 전 장관의 구속으로 검찰 수사는 변곡점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 전 장관의 구속영장에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주석 전 안보실 1차장을 공범으로 적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문 정부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전 정부 국무위원이 구속됐다. 검찰이 생각하는 혐의가 상당 부분 인정된 셈”이라며 “(청와대 수사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 의사 결정권자인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감사원은 앞서 이대준씨 주검을 북한이 소각했다는 국방부 발표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서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문 전 대통령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수사할 ‘발판’을 마련해준 셈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20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증거와 법리에 따라 일체의 다른 고려 없이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전직 대통령은 그 재임 기간에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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