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와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27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현대·기아차의 사내하청 노동자 400여명에 대해 불법 파견을 인정하고 이들을 회사가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대법원이 현대·기아차의 사내하청 노동자 중 간접공정 노동자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이 인정된다며 회사가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간접공정 노동자의 불법파견이 인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271명,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159명 등 총 430명이 회사를 상대로 각각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27일 확정했다. 일부 원고를 제외한 대부분 원고의 정규직 노동자 지위를 인정하는 한편, 원고들이 받지 못한 정규직 임금과 사내하청업체 임금 사이의 차액 총 107억여원에 대해서도 회사가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두 사건 원고들은 1995~2005년 즈음 협력업체에 입사해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과 기아차 광주·화성·소하리 공장에서 직접·간접공정 업무를 담당해왔다. 직접공정이란 메인 컨베이어벨트에서 이뤄지는 작업으로 차체에 도료를 칠하는 도장공정, 차체를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고 부품을 조립하는 의장공정 등을 말한다. 간접공정은 컨베이어벨트를 직접 활용하지 않는 생산관리, 출고 업무 등을 뜻한다. 원고들은 현대·기아차가 사내협력업체와 실질적으로 근로자파견계약을 맺은 채 노동자들을 2년 넘게 사용했으므로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했다며 2010∼2011년 소송을 제기했다. 파견법은 파견직으로 2년 넘게 일한 노동자를 원청이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건의 쟁점은 컨베이어벨트 바깥에서 일하는 간접공정 하청 노동자들도 원청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는지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 사건 1·2심과 마찬가지로 간접공정 노동자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간접공정 노동자의 작업량이나 업무시간 같은 노동조건도 직접공정인 컨베이어벨트 생산속도에 연동해서 이뤄졌고 △원청이 업무를 지휘·명령했다는 점을 바탕으로 간접공정 노동자에 대해서도 정규직 지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2심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일부 원고에 대해서는 대법원 상고심 진행 중 정년(만 60살)이 지났다는 이유로 이들의 소송을 각하했다.
이번 판결은 완성차 업체에서 사내 하도급을 활용했던 대부분의 공정이 ‘불법 파견’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 판결이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기덕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일하는 직접생산공정뿐만 아니라, 물류업무나 2차 하청까지 현대·기아차 안에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는 기본적으로 원청인 현대차가 사용하는 근로자라는 걸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완성차 공장의 불법파견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돼왔다.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가 2004년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낸 뒤, 2010년 현대차의 불법 파견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유사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잇따라 제기된 것이다. 이날 대법원 판결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2010~2011년 소송을 낸 이들이다.
노동계에서는 고용노동부와 검찰도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견법은 불법파견을 활용한 사용사업주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있는데, 그동안 노동부와 검찰이 파견법 위반에 대해 소극적으로 수사해 불법파견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것이다. 기아차 화성공장 사내하청노동자로 이번 소송의 원고이기도 했던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더 이상 법원 문턱을 들락거리면서 내 지위가 정규직인지 확인해달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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