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안함, 그리움, 그리고 분노…
이태원 ‘생존자’ ㄱ씨의 일주일
미안함, 그리움, 그리고 분노…
이태원 ‘생존자’ ㄱ씨의 일주일
6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인근 심리지원 상담부스가 닫혀 있다. 용산구는 합동분향소 인근 심리지원 상담부스 운영을 5일 종료하고 8일부터 25일까지 구청 인근(녹사평대로32길 43)에서 이태원 참사 재난 심리지원 카페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주방장님은 양파 썰다가 앞치마 두른 채 뛰쳐나가
노는 것에 죄책감 가질까봐 더 화가 난다
참사 후 초기에는 사고 당시의 장면을 반복해 떠올리고 집착하듯이 계속해 뉴스를 확인했다. 죄책감과 자책감이 점차 심해졌다. 그는 사고 며칠 뒤 용기를 내 이태원을 다시 찾았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헌화한 뒤 술을 따르고, 절을 두 번 했다. 직접 준비해 온 편지지에 편지를 써서 붙였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며 누구에게든 베풀며 살아갈게요.’
그 뒤로 그리움이 물밀 듯 몰려왔다. 길거리에서 마주쳤던 얼굴들이 하나씩 떠올랐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을까 궁금해졌다. 특히 ‘녹색어머니회’ 분장을 했던 여섯 명의 젊은 남성들이 자꾸 생각났다. “녹색어머니회 친구들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 기적처럼 이들과 에스엔에스로 연락이 닿았어요. 모두 무사히 살아 있다고요. 그 친구들은 그날 모두 뿔뿔이 흩어져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하네요.”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이전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되자 분노가 찾아왔다. 국무총리는 농담을 했고, 행정안전부 장관은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했다. 마음에 와 닿는 사과를 하는 위정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과를 안 한다는 건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거고, 결국 앞으로도 잘못된 것이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거든요. 아니, 어쩌면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아직 희생자들이 놀다 죽은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무엇보다 어린 친구들이 앞으로 노는 것도 죄책감을 가질까 봐 더 화가 납니다. 한참 더 ‘나대야’ 하는 친구들인데요.”
조용히 상처를 받고 있을 사람들에게도 마음이 뻗쳐갔다. 사고 이후 ‘그때 인근 술집 직원들은 뭐했냐’는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언론 보도와 온라인을 통해 퍼져 나갔다. ㄱ씨는 그날 인근 상인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제가 있던 술집 주방장님은 양파를 썰고 있다가 아수라장이 된 바깥 상황을 보고 앞치마를 두른 채 뛰쳐나갔고, 인터넷에서 공격받고 있는 술집 직원들도 모두 다친 분들을 돕고 있는 것을 봤어요.”
ㄱ씨는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지난 3일 밤 처음으로 잠을 잤고, 다음날에는 일도 시작했다. 떨어진 생필품을 채워놓고, 커피도 한 잔 내려 마시고 산책도 했다. “그날(3일)은 함께 있었던 친구에게서 처음으로 연락이 왔어요. 같이 공유하던 계정의 비밀번호를 묻더라고요. 친구가 ‘그 비밀번호 귀엽다. 너처럼 귀엽다’고 말하자 ‘그거 네가 지은 건데’라고 말했어요. 그 순간 ‘픽’ 하고 웃음이 터지더라고요. 정말 아무것도 아닌 대화에서 희한하게 위로가 됐어요.” 아직 그날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지만, ㄱ씨는 점점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ㄱ씨는 자신의 경험이 더 퍼져 나가 생존자를 비롯해 직·간접적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상담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사상자들은 물론이고 생존자, 목격자부터 이 국가적 재난을 함께 겪고 있는 시민들까지. 모두가 아픈 상태일 겁니다. 각자의 거주지마다 상담이 가능한 정신건강센터가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상담을 받아봤으면 좋겠어요.” ㄱ씨는 상담치료가 끝날 때까지 인터넷에 기록을 남길 계획이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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