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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도와달라 요청에도 무서워서 집으로…‘저, 생존자인가요’

등록 2022-11-07 07:00수정 2022-11-07 18:07

[인터뷰]
미안함, 그리움, 그리고 분노…
이태원 ‘생존자’ ㄱ씨의 일주일
6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인근 심리지원 상담부스가 닫혀 있다. 용산구는 합동분향소 인근 심리지원 상담부스 운영을 5일 종료하고 8일부터 25일까지 구청 인근(녹사평대로32길 43)에서 이태원 참사 재난 심리지원 카페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6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인근 심리지원 상담부스가 닫혀 있다. 용산구는 합동분향소 인근 심리지원 상담부스 운영을 5일 종료하고 8일부터 25일까지 구청 인근(녹사평대로32길 43)에서 이태원 참사 재난 심리지원 카페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사실 생존자는 아닌 거 같아요. 와이키키 술집 앞에 껴 있었고, 압사 사고 골목으로 휩쓸려갈 뻔했던 것도 맞긴 하지만... (중략) 10시40분쯤부터는 ‘아 살았다. 이제 그럼 술 먹고 놀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었던지라 참사 생존자로 분류는 아닌 것 같아요.”

‘이태원 참사’로부터 나흘째가 된 지난 2일 ‘생존자’ ㄱ(32)씨는 노트북을 열어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적어 내려갔다. 지난달 29일 사고 당시 압사 현장에서 빠져나온 그는 이틀 뒤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고위험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참사 현장에서 함께 빠져나와 집으로 귀가한 친구와도 그날로 연락이 끊겼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ㄱ씨는 어떻게든 스스로를 지켜내야 했다.

“처음 전화를 걸어 상담한 한국심리학회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상담한 내용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면 다른 사람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처음에는 에스엔에스(SNS)에 올리라고 했는데 지인들이 보면 부담스러울까 봐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비공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어요.”

ㄱ(32)씨는 6일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매일 일기를 쓴다는 그는 한 차례 책을 집필했던 작가다. ㄱ씨는 지난 2일 새벽 1시37분, 다음 카페 ‘소울드레서’에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날까지 그는 11편의 글을 올렸고, 글은 다른 커뮤니티로 퍼져 나가며 ‘마음 아프지만 꼭 필요한 글이다’, ‘연대의 힘을 느꼈다’ 등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주방장님은 양파 썰다가 앞치마 두른 채 뛰쳐나가

ㄱ씨는 사고 당일 29일 밤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사고가 일어난 인근 길거리에서 분장한 이들과 사진을 찍고 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 사이에 끼기 시작했고 친구를 잃어버렸다. 사고가 난 골목으로 휩쓸려가기 전이었고 발은 땅에 닿지 않았다. 주변 시민의 도움으로 난간에 끌어올려진 것은 밤 10시40분. 이어 문을 열어준 한 술집에 몸을 피할 수 있었고 친구도 만났다.

그때까지 그는 상황 파악이 안 된 채 ‘지났으니 됐다’는 마음으로 대피한 술집에서 30분 동안 놀았다. 이후 경찰이 통제를 시작하고,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 나가는 동안에도 아무런 뉴스가 뜨지 않고, 통신 신호도 제대로 잡히지 않아 상황을 알 수 없었다. 사고 지점에서 이촌역까지 1시간을 걸어서야 휴대폰 알림이 연이어 울리기 시작했고 “너 어디 있냐”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참사 상황을 알게 된 것은 다음날 뉴스를 통해서였다. 구출 후 바닥에 누워있던 여성과 도와달라고 소리치던 친구의 모습, 심폐소생술(CPR)을 도와달라는 요청에도 무서워서 집으로 돌아갔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커졌다.

그는 친한 지인의 추천으로 참사 다음 날 오후 한국심리학회에 전화를 걸어 무료 전화상담을 받았고, 국가트라우마센터 전화상담과 지역 정신복지센터 대면 상담 등을 통해 현재는 정신과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ㄱ씨는 지난 일주일간의 심경 변화를 세 문장으로 꼽았다. ‘사과하고 싶다’, ‘그립다’, 그리고 ‘화가 난다’였다.

노는 것에 죄책감 가질까봐 더 화가 난다

참사 후 초기에는 사고 당시의 장면을 반복해 떠올리고 집착하듯이 계속해 뉴스를 확인했다. 죄책감과 자책감이 점차 심해졌다. 그는 사고 며칠 뒤 용기를 내 이태원을 다시 찾았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헌화한 뒤 술을 따르고, 절을 두 번 했다. 직접 준비해 온 편지지에 편지를 써서 붙였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며 누구에게든 베풀며 살아갈게요.’

그 뒤로 그리움이 물밀 듯 몰려왔다. 길거리에서 마주쳤던 얼굴들이 하나씩 떠올랐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을까 궁금해졌다. 특히 ‘녹색어머니회’ 분장을 했던 여섯 명의 젊은 남성들이 자꾸 생각났다. “녹색어머니회 친구들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 기적처럼 이들과 에스엔에스로 연락이 닿았어요. 모두 무사히 살아 있다고요. 그 친구들은 그날 모두 뿔뿔이 흩어져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하네요.”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이전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되자 분노가 찾아왔다. 국무총리는 농담을 했고, 행정안전부 장관은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했다. 마음에 와 닿는 사과를 하는 위정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과를 안 한다는 건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거고, 결국 앞으로도 잘못된 것이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거든요. 아니, 어쩌면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아직 희생자들이 놀다 죽은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무엇보다 어린 친구들이 앞으로 노는 것도 죄책감을 가질까 봐 더 화가 납니다. 한참 더 ‘나대야’ 하는 친구들인데요.”

조용히 상처를 받고 있을 사람들에게도 마음이 뻗쳐갔다. 사고 이후 ‘그때 인근 술집 직원들은 뭐했냐’는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언론 보도와 온라인을 통해 퍼져 나갔다. ㄱ씨는 그날 인근 상인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제가 있던 술집 주방장님은 양파를 썰고 있다가 아수라장이 된 바깥 상황을 보고 앞치마를 두른 채 뛰쳐나갔고, 인터넷에서 공격받고 있는 술집 직원들도 모두 다친 분들을 돕고 있는 것을 봤어요.”

ㄱ씨는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지난 3일 밤 처음으로 잠을 잤고, 다음날에는 일도 시작했다. 떨어진 생필품을 채워놓고, 커피도 한 잔 내려 마시고 산책도 했다. “그날(3일)은 함께 있었던 친구에게서 처음으로 연락이 왔어요. 같이 공유하던 계정의 비밀번호를 묻더라고요. 친구가 ‘그 비밀번호 귀엽다. 너처럼 귀엽다’고 말하자 ‘그거 네가 지은 건데’라고 말했어요. 그 순간 ‘픽’ 하고 웃음이 터지더라고요. 정말 아무것도 아닌 대화에서 희한하게 위로가 됐어요.” 아직 그날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지만, ㄱ씨는 점점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ㄱ씨는 자신의 경험이 더 퍼져 나가 생존자를 비롯해 직·간접적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상담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사상자들은 물론이고 생존자, 목격자부터 이 국가적 재난을 함께 겪고 있는 시민들까지. 모두가 아픈 상태일 겁니다. 각자의 거주지마다 상담이 가능한 정신건강센터가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상담을 받아봤으면 좋겠어요.” ㄱ씨는 상담치료가 끝날 때까지 인터넷에 기록을 남길 계획이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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