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은폐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려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군 첩보를 삭제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던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법원의 구속적부심 인용 결정으로 8일 석방됐다. 증거인멸 우려 등 구속 필요성에 대한 법원 판단이 달라진 셈이라, 향후 검찰의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윗선 수사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재판장 원정숙)는 이날 오전 서 전 장관이 청구한 구속적부심을 인용했다. 구속 수사를 받는 피의자는 법원에 구속 필요성과 적법 여부를 다시 심리해 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재판부는 서 전 장관이 범죄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고, 사건 관계자에 위해를 가할 우려도 없다며 석방 사유를 밝혔다. 앞서 지난달 22일 김상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는데, 구속 17일 만에 상반된 판단이 나온 셈이다. 대신 재판부는 보증금 1억원을 납입하는 조건으로 석방하면서 △주거지를 바꾸지 않고 △법원 또는 검사의 출석 요구에 응하며 △피의사실과 관련된 사람들과 연락을 취하지 말 것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검찰은 서 전 장관이 서해 사건 관련 국방부 첩보를 삭제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공모해 ‘월북 가능성이 높다’는 합동참모본부 보고서를 쓰도록 했다고 의심한다. 당초 전 정권 국무위원인 서 전 장관이 도주할 가능성이 극히 적은데다, 이미 민간인 신분이라 국방부 등 내부망에 접근할 권한도 없다는 점에서,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을 낮게 보는 법조인이 많았다. 그런데도 법원이 증거인멸 가능성 등을 들어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범죄 혐의가 상당 부분 입증된 것 아니냐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이날 다른 재판부가 핵심 혐의와 일부 연결되는 판단을 뒤집으면서, 검찰은 물론 감사원까지 뛰어든 이 사건 수사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 전 장관을 발판삼아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에 대한 수사로 나아가려 했던 검찰로서는 섣불리 혐의를 적용하거나 강제수사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된 셈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전 정권 핵심 인사들은 실무 부처 담당자인 서 전 장관과 연관해 범죄 혐의가 적용되기 때문에, 서 전 장관 구속 필요성이 없다는 법원 판단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애초 구속영장 발부가 의외라는 법조인들이 많았다. 검찰이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판단하면서 재판에서의 방어권 역시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석방한 것 같다”고 했다.
서 전 장관이 풀려나면서 검찰의 기소 시점도 다소 미뤄질 전망이다. 수사팀은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9일 재판에 넘길 방침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서 전 장관 석방과 관련해 “차질 없이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서 전 장관과 함께 구속된 뒤 부친상으로 일시 석방된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이 재수감되는 10일 이후 이들을 기소할 것으로 보인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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