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새벽 5시께 서울 금천구 독산고개 대로변에 마련된 ‘새벽일자리쉼터’를 찾은 노동자들. 박지영 기자
올해 첫 한파 경보가 내려진 30일 새벽 4시30분.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를 찍었다. “어휴, 오늘 진짜 춥네요.” 몸을 잔뜩 웅크린 이들이 인력사무소가 모여 있는 서울 금천구 독산고개 인근 대로변에 구청이 마련한 ‘새벽일자리쉼터’로 하나둘 들어왔다. 다들 외투를 서너겹씩 껴입고 장갑, 모자, 귀마개로 온몸을 꽁꽁 싸맸다.
“자, 차 한 잔 드시고. 옷 따뜻하게 입으셨죠?” “아유 따숩게(따뜻하게) 입고 오셨네. 눈만 보이셔 아주~.” 일터로 향하는 승합차를 타기 전 쉼터에 들른 이들은 구청 직원들이 인사와 함께 건넨 따뜻한 커피와 차 한잔으로 온기를 채웠다.
“추울 때는 일 안 하고 쉬려 해도 먹고살아야 하니 그냥 꽁꽁 싸매고 나오는 거지 뭐.” 일감을 찾으러 나온 이광문(54)씨는 “건설 현장에선 계속 돌아다니며 일해야 하니 이렇게 강한 추위는 피할 수가 없다. 여름보다 겨울이 더 힘들다”면서도 “오늘 동료들 주려고 솜바지를 두세벌 더 챙겨왔다”고 했다.
건설 노동자 양정희(61)씨는 “오늘부터 한파가 시작된다 해서 방한용 바지를 껴입었다. 이렇게 날씨가 추우면 손이 얼어 물건을 잘 못 집어서 떨어트리곤 하는데 위험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한 중국인 일용직 노동자도 서툰 한국말로 “오늘 너무 추워서 평소보다 두껍게 입었다”고 했다. 중년의 여성 일용직 노동자들도 쉼터에 들러 잠시 몸을 녹였다.
전날 금천구청은 본격적인 한파에 대비해 쉼터에 천막을 치고 전기난로를 준비했다. 구청 계약직 노동자로 쉼터에서 1년 가까이 노동자들에게 커피와 차를 내어주는 일을 한 김정호(60)씨는 “폭염이나 한파 경보가 뜨면 아무래도 날씨 영향을 직접 받는 현장 노동자들 걱정부터 하게 된다”고 말했다.
30일 새벽 5시께 인력사무소들이 모인 서울 금천구 독산고개 인근 골목길 모습. 박지영 기자
한파가 찾아온 이날 새벽 4시~아침 7시 사이 일용직 노동자 70여명이 쉼터를 찾았다. 서해안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등 서울 외곽으로 빠지는 고속도로 교차 지점이기도 한 금천구와 인근 구로구 새벽 인력시장 규모는 하루 1400여명 정도다.
대부분 콘크리트 타설, 타일, 미장, 목공 등 건설현장 관련 일자리를 찾아나선 이들이다. 금천구의 경우 새벽 인력시장 규모는 하루 400여명으로 추정되는데, 이중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150여명 정도만 현장 노동자로 ‘선택’돼 승합차에 오른다.
최근에는 화물연대 파업 영향으로 시멘트 운송에 차질을 빚으면서 건설현장 일감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독산동의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건설현장에 자재를 실어 나르는 화물차 기사들이 파업한 뒤로 절반 이상의 현장이 멈춘 것 같다. 평소라면 정부 조치 등으로 파업이 이렇게 길어지지 않았을텐데 장기화되면서 일할 곳을 찾는 노동자들이 사무소에 많이 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력사무소는 “최근 일용직 노동자들 국적을 보면, 중국이 80%, 베트남·러시아 등이 10%, 한국 10% 비율 정도 된다. 요즘엔 젊은 청년들도 인력사무소를 많이 찾는 추세”라고 했다.
쉼터 전기난로 앞에서 몸을 데우는 것도 잠시, 일감을 따낸 노동자들은 독산고개 도로 갓길에 비상등을 켠 채 대기 중인 스타렉스 승합차를 타고 하나둘 일터로 향했다. “오늘 돈 많이 버세요~.” 노동자들 뒤로 쉼터 직원들이 매일 하는 인사를 건넸다.
30일 새벽 5시께 인력사무소들이 모인 서울 금천구 독산고개 인근 대로변에 일용직 노동자 픽업 차량들이 비상등을 켠 채 정차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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