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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학 커뮤니티 ‘에타’ 삼킨 혐오…좌표 찍어 총학 결정에도 입김

등록 2022-12-05 17:13수정 2022-12-07 10:03

‘에브리타임’ 등 대학교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학내 유일한 소통창구 자리 잡아
혐오·차별 온상 됐지만 총학생회 무시할 수 없는 속사정
“학내 공론장 활성화·필터링 기능 강화해야”
지난 2020년 11월 에타에 올라온 익명의 악플로 서울의 한 대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25개 청년, 인권,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학내 사이버불링, 혐오표현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지난 2020년 11월 에타에 올라온 익명의 악플로 서울의 한 대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25개 청년, 인권,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학내 사이버불링, 혐오표현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지난 10월 축제 입장권을 배부할 때 ‘공지가 늦었다’, ‘과별로 입장권 배부가 균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에브리타임에 한 학과 대표 이름과 연락처가 공개됐더라고요. 실명으로 활동하는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온갖 공격이나 혐오에 노출되다 보니 에브리타임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죠.”

연세대 미래캠퍼스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김태균(27)씨는 5일 <한겨레>에 ‘에브리타임’ 등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여론에 대학 총학생회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재 전국 400여개 대학교에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기능을 제공하는 에브리타임을 필두로 2010년대 초반 우후죽순 생긴 대학 익명 커뮤니티들이 학내 여론 창구로 떠올랐지만, 학생회 및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표현의 온상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대학생들의 유일한 소통창구로 자리 잡자 최근 각 대학 총학생회 중요 의견 결정 과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7월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를 대행했던 중앙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비대위 내 인권연대국이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축제를 이틀 앞두고 임시회의를 열어 ‘불참’ 결정을 내렸다. 지난 9월에도 고려대 총학생회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를 ‘장애 인권’ 강연자로 초청했다 공지 사흘 만에 취소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 인권연대국 소속으로 활동했던 ㄱ씨는 “에브리타임이나 (고려대 내 커뮤니티) 고파스 등 커뮤니티 여론을 총학에서 신경을 안 쓸 수 없다. 퀴어퍼레이드 불참 결정이나 박 대표 강연 취소 과정에서도 커뮤니티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나오자 ‘학우들이 싫어할 것이다’, ‘에브리타임 여론이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학생들 의견을 보여준다’ 등 커뮤니티 글들을 이유로 갑자기 취소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총학생회 내부에서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여론의 ‘눈치’를 보는 배경에는 총학 소속 학생들을 향한 좌표찍기식 공격이 온라인상에서 일상화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고대 세종캠퍼스 총학생회 소속 ㄴ씨는 “커뮤니티에 개인 신상이 공개되고, 각종 공격을 받다 보니 어떤 활동을 해도 ‘에브리타임에서 공격받진 않을까’ 위축돼고 눈치 보여 사업 규모를 축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태균 전 연세대 미래캠퍼스 비대위원장 또한 “전체 학생 중 5∼10% 정도만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는데, 이 학생들이 익명에 숨어서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밝히고 활동하는 학생회 소속 학생들을 공격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특히 익명 커뮤니티에서 지방캠퍼스 소속 학생들을 향한 혐오와 비난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난달 고려대 총학생회 선거를 앞두고 후보에 출마한 한 선거운동본부는 ‘세종 캠퍼스 이원화(통합) 저지’ 등이 담긴 공약 게시글을 에브리타임과 고파스 등에 올렸다. ‘세종캠퍼스 이중전공 축소’, ‘학생증·졸업증명서 구분 요구’ 등 사실상 서울-분교 캠퍼스를 ‘갈라치기’하는 공약들이지만, 게시글이 올라오자 커뮤니티에는 “공부 지지리도 못하고 4점대 찍던 애들이랑 피 쏟으면서 공부해서 1점대 찍은 애들이 같은 취급 받는다고 하면 퍽이나 좋아라 하겠다”, “세종캠 여학우 외모순 상위 50명은 안암캠 인정제도 도입 필수” 등 도 넘은 차별·혐오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전문가들은 익명·비대면에만 기대는 것이 아닌, 학생들이 대면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차별·혐오 표현들을 보면, 과연 오프라인에서 친구들과 얼굴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소수의 혐오·차별 표현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야기되면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곤 한다. 오프라인에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맞부딪치면서 토론할 수 있는 공간들이 학교 안에 많이 생길수록 커뮤니티 영향력은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차별·혐오 표현을 걸러낼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필터링’ 기능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생 페미니스트 단체인 ‘유니브페미’의 윤김진서 운영위원장은 “‘차별·혐오 표현 금지’ 문구 등 플랫폼 이용 규칙을 개정하고, 혐오 내용이 담기면 자동 삭제하는 에이아이(AI) 기능을 에브리타임과 같은 플랫폼 기업이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에브리타임 관계자는 <한겨레>에 “불법행위, 각종 차별·혐오 등 커뮤니티 분위기 형성과 운영에 악영향을 미치는 행위들을 제한하기 위해 게시물 작성 전 이용규칙을 제공한 후 지속적으로 개정하고 있다”며 “에이아이 도입 등 운영 시스템 구축과 운영팀 보강으로, 사용자 문의 및 신고의 신속한 처리와 커뮤니티 이용규칙 준수를 위한 다각적인 조치도 이뤄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에브리타임을 이용하는 고려대 재학생 ㄷ(24)씨는 <한겨레>에 “혐오 표현이 들어간 게시글을 신고해도 2~3일 뒤에나 삭제 처리되기 때문에 해당 게시글이 순식간에 퍼지는 걸 제대로 막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 이용규칙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달 고려대학교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왼쪽)과 고파스(오른쪽)에 올라온 게시글. 독자 제공
지난달 고려대학교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왼쪽)과 고파스(오른쪽)에 올라온 게시글. 독자 제공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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