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5월28일 경찰의 봉쇄를 뚫고 연세대에서 모인 교사들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식을 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과 참여 교사 해직 과정에서 안전기획부 기획으로 국가기관 11곳이 총동원돼 사찰과 불법감금 등 전방위적인 탄압을 가한 사실이 밝혀졌다. 1989년 전교조 결성 이후 33년 만에 이뤄진 국가의 진실규명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9일 “국가가 전교조 참여 교사들에 대해 사찰, 탈퇴종용, 불법감금, 사법처리, 해직 등 전방위로 탄압했다. 국가는 이부영 전 전교조 위원장 등 신청인 247명에 대해 노동의 자유,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직업의 자유 등 인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전날 연 전원회의에서 전교조 결성과 관련해 1500여명의 교사가 해직된 사건은 ‘부당한 공권력으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결정했다.
진실화해위는 전교조 탄압 과정에서 “안기부의 총괄 기획하에 문교부, 법무부, 보안사령부, 경찰 등 11개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전방위적인 탄압으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1989년 8월 안기부는 ‘전교조 징계조치 이후 전망과 대책’이라는 문건에서 교사 징계 현황 등을 언급하며, 대책으로 “정부의 전교조 가담교사 징계에 대한 당위성 확보와 악화되고 있는 여론의 반전 차원에서 전교조 결성목표가 ‘참교육’을 빙자해 좌익이념인 ‘민중교육론’을 교육계에 확산시키는데 있음을 홍보해 국민공감대를 형성, 교육계로부터 과감히 축출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국가기관은 안기부 기획에 철저히 협조했다. 법무부(대검찰청)는 노조 주동자에 대한 강력한 사법 조치, 이념적 배후에 대한 수사 및 공표, 좌경세력 수사 및 검거, 노조 배후 지원단체 수사를 진행하며 전교조 문제를 ‘공안사건화’했다. 문교부는 ‘교원전담실’ 등 교원사찰기구를 설치해 교사와 공무원이 아닌 학부모와 교사 가족 등의 동향까지 파악해 정보를 정보·수사기관에 제공했다. 문교부는 또 전교조 교사들의 행정소송과 헌법재판소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등에 대응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와 법원을 상대로 전방위적인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 보안사는 교사 미행과 가택 침입 등의 불법을 저질렀고, 경찰은 전교조 집회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참여 교사를 별도의 장소로 데려가 며칠씩 불법감금을 했다. 심지어 일선 경찰과 동장 등 말단 공무원까지 차출돼 교사 가족에게 ‘이혼을 요구’하거나 ‘자살소동을 종용’하는 방법이 동원된 사실도 밝혀졌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배·보상 등을 해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위법하고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피해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처 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전교조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했지만, 해직 교사들에 대한 피해 보상 지원은 다루지 않았다.
전교조는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결성 33년 만에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을 위한 첫발을 뗐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전교조는 “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가족까지 빨갱이로 낙인찍혀 파탄에 이른 일상 등 국가폭력은 1500명 해직교사의 삶에 아로새겨져 있다”며 “국가폭력에 의해 거리의 교사로 5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야 했던 해직 교사들은 교단에 복귀했지만, 지금껏 피해 교사에 대한 지원 방안은 전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정부는 전교조 결정 관련 해직 교사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 회복을 위한 배·보상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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