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의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구금·고문당한 외국인의 난민 지위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0단독 최기원 판사는 ㄱ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 불인정 결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이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지난달 확정됐다.
이집트인 ㄱ씨는 2011∼2014년 자국에서 쿠데타 반대 및 민주화,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에 수차례 참여했다. 이후 2017년 안보 당국에 체포돼 두 달 가까이 감금된 채 ‘반정부 단체 회원임을 자백하라’고 요구받으며 고문당했다. ㄱ씨는 같은해 6월 매주 1회 안보 기관에 출석해 신상을 보고하는 조건으로, 보석 보증금 1만 이집트파운드(약 53만원)를 내고 석방됐다. 그러다 같은 조건으로 풀려난 친구가 다시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2018년 2월 가족과 함께 도피 목적으로 출국했다. ㄱ씨는 그해 5월 관광·통과(B-2) 체류자격으로 한국에 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난민 신청을 했다. 하지만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ㄱ씨가 본국으로 돌아가면 박해받을 게 분명하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며 ㄱ씨의 난민 인정을 기각했다. ㄱ씨는 법무부 장관에게 이의를 신청했지만 이마저도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ㄱ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ㄱ씨가 체포·구금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미결구금명령서와 경찰 조사록 등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박해 경험에 관한 ㄱ씨의 진술이 합리적이고 수긍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ㄱ씨 조국의 현재 상황에 비춰보면 반정부 시위 참여자에 대한 탄압은 현재까지 이뤄지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귀국할 경우 다시 체포되거나 강제 실종 당할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