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이태원 참사 이후 두 달여만에 기자간담회를 열어 사실상 자리를 지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청장은 참사 당일 지역의 한 캠핑장에서 술을 마시고 잠이 들어 희생자 유족과 야권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윤 청장은 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거취 문제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특수본 수사 결과에 대해 가타부타 말씀드리기는 적절치 않을 거 같다. 수사 결과에 상응해 저의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이번주 중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윤 청장이 “특수본 수사 결과”를 언급한 것은, 자신에게 법적 책임이 없다는 수사 결과가 예상되는 만큼 청장직에서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윤 청장은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감찰과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다는 이유로 정례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지 않고 서면 간담회 등으로 대체했다. 그러나 특수본이 서울경찰청장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밝힌 직후 곧바로 기자간담회를 재개한 것이다. 앞서 지난해 10월17일 경찰청장기 사격, 무도대회를 이유로 불참한 것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약 4개월 만이다. 윤 청장이 대통령실 등으로부터 ‘유임’ 의사를 전달받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셀프수사 논란을 부른 경찰청 특수본은 두 달여 수사 기간 동안 윤 청장 조사를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참사 대응 관련 특별감찰을 진행한 경찰청 역시 윤 청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찰을 하지 않았다.
윤 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선전전에 대한 강력 대응 방침도 밝혔다. 윤 청장은 “(선전전이) 꽤 오랜 기간 반복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런 불편을 감안해 사전 차단 대응을 하고 있는데, 불법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응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고 했다. 불법 행위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미리 열차 탑승을 막는 것을 두고 법적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 않고 사전 차단을 계속 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2021년 제주에서 숨진 빌라·오피스텔 임대업자 정아무개씨와 관련해 한 컨설팅업체를 배후로 보고 입건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도 밝혔다. 윤 청장은 이날 “사망한 임대인의 배후가 최근 확인돼 수사 중”이라며 “유사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판단돼 배후 세력 등을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정씨는 서울 강서·양천구 일대에 신축 빌라와 오피스텔 약 240채를 사들여 세를 놓다 2021년 7월 제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위임장을 들고 다니며 매매·임대 계약을 한 컨설팅업체를 배후로 판단하고 전세사기 공범으로 입건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정씨는 바지 집주인에 가깝고 컨설팅업체가 실질적인 주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아울러 중국 비밀경찰서 의혹이 불거진 중식당 동방명주 실소유자이자 에이치지(HG)문화미디어 대표인 중국 국적의 왕하이쥔(44)이 경찰 요청으로 죽거나 다친 중국인의 귀국을 도왔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윤 청장은 “왕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서울 강서경찰서를 꼭 집어서 협조를 요청했다고 했는데 확인 결과 그것을 뒷받침할 기록 자체가 없다”며 “112신고나 관련 서류들이 다 보관돼 있는데 해당 시점에서 왕 대표의 주장과 연관성이 있는 자료는 없었다”고 했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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