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ㄱ군이 한 달 동안 생활한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시설보호아동 자립체험주택’ 의 약 6평(19㎡) 짜리 원룸. 박지영 기자
“혼자 살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구나’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밤에 혼자 자면서 외로움도 처음 느껴봤고요. 한번 해봤으니 나중에는 더 잘 살 수 있겠죠?”
16일 ㄱ(19)군은 인생 첫 자취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ㄱ군은 어릴 때부터 살아온 아동복지시설을 떠나 지난달 서울 서대문구 원룸에서 처음으로 홀로살이를 체험했다. 한 달 동안 혼자 살면서 생필품 구매부터 요리와 청소, 빨래까지 모두 직접 해봤다. “처음 장 볼 때 샴푸, 세제가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놀랐어요. 끼니 챙기는 것도 문제였고요. 시설에선 선생님들이 다 해줬는데….”
처음 경험해본 기쁨도 있었다. ㄱ군은 자립 첫날 위층에 사는 친구와 함께 장을 보고 저녁 메뉴로 제육볶음을 만들어 먹은 기억이 “뿌듯하다”고 했다. 서툰 요리 솜씨에 허둥지둥했지만 ‘나만의 공간’에서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보낸 시간은 ㄱ군이 처음 느껴본 소소한 행복이었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ㄱ군은 올봄 시설을 떠나 본격적인 ‘자립’ 생활을 앞두고 집을 구하는 중이다. ㄱ군은 “지내보니 아무리 좁아도 깨끗한 원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체험주택 관리 선생님과 함께 인근 부동산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열심히 방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ㄱ군은 지난해 10월 전국 최초로 지역 내 보호종료를 앞둔 청소년들에게 최대 한 달간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서대문구 자립체험주택 덕분에 자취생활을 체험할 수 있었다. 구청은 시설에서 퇴소를 앞둔 보호종료 청소년들이 자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일상생활부터 돈 관리, 자기보호, 진로 계획 등을 위한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입주한 청소년들은 한 달 생활비 50만원도 추가로 받는다. 이런 프로그램은 홀로서기에 나서는 청년들에게 돈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대한 조언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도입됐다. 지난해 광주에서 세상을 등진 한 보호종료청년이 “삶이 가혹하다”는 유서를 남기면서, 이들에 대한 심리적·정서적 지원도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만들어진 제도다.
지난해 10월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시설보호아동 자립체험주택’에 머문 한 자립준비 청년이 쓴 가계부. 박지영 기자
ㄱ군과 마찬가지로 직접 가계부를 써보고, 청소와 빨래까지 고군분투하며 ‘혼자 살기’를 겪은 청소년들은 곧 마주할 ‘자립’에 대한 기대와 어려움을 동시에 겪었다고 한다. 이들은 체험을 마친 뒤 쓴 소감문에서 “혼자 결정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공과금 납부 방법을 알게돼 도움됐다”, “가계부 쓰면서 생활비 계획하는 게 힘들었는데 한 달 동안 해보니 조금 익숙해졌다” 등 ‘홀로서기’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털어놨다.
‘커뮤니티 매니저’로 체험주택에 청소년들과 함께 머무른 신남숙 서대문구 아동청소년과 주무관은 “아무런 경험 없이 자립한 청년들을 직접 찾아가 보면 겪어보지 못한 외로움, 돈 관리의 어려움 등을 토로한다”며 “홀로살이 경험을 통해 청년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이들에 대한 정부 정책은 지원 금액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발표한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에 따라 올해부터 자립수당은 기존 월 35만원에서 40만원으로 늘어난 정도다. 정부는 지자체에 자립정착금 지급액을 1000만원을 제공하라고 권고도 했지만, 지자체 사정마다 실제 지급액은 제각각이다.
전문가들은 보호종료 아동들에게 ‘통합적인 자립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보호종료 아동들이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으려면 홀로 사는 경험을 통해 ‘혼자만 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금성 지원도 중요하지만, ‘자립 체험’과 같은 서비스 측면의 복지제도가 더 많이 늘어나야 하고, 체험 이후에도 상담 등 지속적인 모니터링 체계도 확립돼야 한다”고 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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