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59) 시인은 최근 동료 시인이 ‘2월의 흐린 오후’란 제목의 시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 시는 동료 시인이 챗지피티(ChatGPT)에 시를 써달라고 주문했는데, 그 수준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나무는 헐벗고 자존심이 없으며 가지가 숨어있는 것처럼 뻗어 있다’고 작성된 구절을 본, 신 시인은 6일 <한겨레>에 “나무가 자존심이 없다는 말을 알고 쓴 건지 모르고 쓴 건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 그럴듯하게 적었다. 인공지능(AI)이 ‘자존심’이란 단어를 쓴 것은 놀랍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레퍼런스(참고 대상)가 많이 쌓이면 더욱 놀라운 시가 작성될 것이라 본다”며 “언어를 직업으로 다루는 시인으로서 위기를 느꼈다”고 덧붙였다.
스타트업 오픈에이아이(OpenAI)가 지난해 12월1일 공개한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가 두 달여 만에 글로벌 사용자가 1억명을 돌파하는 등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챗지피티는 사용자가 ‘질문’하면 방대한 정보를 수집해 정교하고 논리적인 글을 만들어 그에 걸맞은 ‘대답’을 한다. 이에 챗지피티가 논문은 물론, 창작의 영역인 시까지 작성하면서 인간의 직업을 모두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신과 전문의 장아무개(41)씨는 “공감능력이 필요한 정신 의학은 기술이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면서도 “의학을 발달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봤다. 장씨는 “정신과에서 많이 처방되는 신경안정제 중 하나가 의존성이 없느냐 등을 챗지피티에 물었는데 ‘의존성이 있을 수 있고 장기적으로 투약하다가 멈추면 급성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고 대답했다”며 “고개가 끄덕여지고 (의사로서) 긴장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법률 서비스 역시 위협받기는 마찬가지다. 법무법인 한결의 법률에이아이(AI) 팀장을 맡은 강태헌 변호사는 “쟁점이 복잡한 서면 작성 등의 업무를 당장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지만,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인공지능 책임을 인정하는 제도상의 문제만 해결되면 대체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임영익 변호사(인텔리콘 법률사무소)는 “뺑소니 사고를 당했을 때 대처법 등 일반인들이 원하는 단순한 1차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개별 사안에 대한 복잡한 2차 추론은 직접은 어렵고 검토 정도만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2차 추론을 직접 해나가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들고, 사회 윤리와 제도 등의 문제가 맞물려있다”고 했다.
챗지피티가 일상이 되면 시험과 평가가 이뤄지는 학교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울산과학기술대 재학생 신승윤(21)씨는 “한국어는 아직 수준이 낮지만, 영어는 거의 완벽한 수준”이라며 “논문을 쓸 때 한국어로 쓰고 외부에 번역을 의뢰하거나 초안을 만든 뒤 감수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챗지피티를 쓰면 이런 비용이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 일부 학교는 교내 와이파이망과 챗지피티 접속을 차단하고, 일부 대학은 시험과 과제물 제출 때 컴퓨터를 못 쓰게 하고 손글씨와 구술시험을 도입하고 있다.
다만 챗지피티가 아직 인간을 대체할 정도로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시각도 많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지금의 챗지피티가 주는 충격은 우리가 인터넷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느낌과 유사하다. 마치 모든 정보가 ‘새롭게’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기존에 존재하는 정보를 꺼내온다. 그동안 찾지 못했던 정보에 불과할 뿐”이라며 “정보를 찾는 방식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을 대체할 정도로 성숙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도 “챗지피티는 네이버 지식인, 위키피디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에서 나온 정보를 가지고 작성되는 보고서도 많은데, 그걸 전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듯이 챗지피티의 대답이 전부 정답이라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에 큰 기대 없이 당장은 챗지피티를 영어 공부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게 좋다는 반응도 있다. 챗지피티의 본래 학습 언어가 영어라는 점 때문에 실용적으로 ‘영어 공부’에 즉각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영어 문장 표현 등을 배우려고 별도 비용을 들여 첨삭을 받기도 하는 점을 고려하면, 작문 학습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직장인 김아무개(44)씨는 “기존 영어 작문 앱들은 약간 부자연스러운 표현들이 있지만, 챗지피티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영어 문장을 쓴다”며 “특히 같은 표현도 여러 버전으로 알고 싶을 때 물어보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특정 상황을 알려주고, ‘나와 대화를 하되, 내가 틀린 표현을 쓰면 고쳐줘’라고 주문하면 완벽한 1대1 대화를 이어가 회화 표현에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영어 학습 방법을 알려준 유튜브 댓글에는 오히려 “코딩에만 활용했지 이렇게 활용하는 방식은 생각도 못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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