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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운동도 사업도 도전적이던, 솔직당당한 ‘가족의 대장’

등록 2023-02-10 08:00수정 2023-02-10 13:57

[미안해, 기억할게] 이태원 희생자 이야기 (20) 이주영
스물아홉의 문구류 디자인 회사 창업자, 가족과 연인 두고 하늘로
이주영(28)씨.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이주영(28)씨.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은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 bonge@hani.co.kr 또는 <한겨레21>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

‘주영의 집’은 경기도 남양주의 한 아파트다. 2023년 1월18일 밤 10시, 이제 막 퇴근한 주영의 오빠 이진우씨는 늦은 저녁 식사로 햄버거·감자튀김을 사왔다. 식탁에 음식을 놓자 수염을 깎지 않은 아빠, 안경 아래 눈이 빨개진 엄마가 앉았다. 세 사람이 쓰기엔 지나치게 큰 식탁이었다. 주영이 아끼던 고양이 ‘민트’와 ‘초코’도 거실을 어슬렁거리다 옆으로 왔다.

“오빠한테 아주 당연하게 생일 선물을 요구했어요. 거의 ‘내놔라’ 수준이었지. 남자친구한테도.”(아빠 이정민씨) “두 남자는 그래도 좋다고 헤헤거리고 줘. 주영인 고집이 보통이 아니어서, 서너 살 때 한겨울인데 티셔츠를 입고 나갔어요. 막상 나가니까 춥거든. 안으니까 꼭 붙어서 안 떨어지는 거야.”(엄마 최진희씨)

가족은 ‘그날’ 이후 늘 그래왔듯, 딸 주영이 사라진 식탁 앞에 앉아 “주영이 뒷담화”를 시작했다.

1994년 여름, 서울 강동구 자택에서. 아기바구니에 담긴 이주영씨 옆에 오빠 이진우씨가 앉아 있다. 유가족 제공
1994년 여름, 서울 강동구 자택에서. 아기바구니에 담긴 이주영씨 옆에 오빠 이진우씨가 앉아 있다. 유가족 제공

매일 밤, 주영이 살아 있는 것처럼

주영은 1994년 3월13일, 봄이 올 무렵 태어났다. “아기가 딸”이란 간호사 말에 산부인과 대기실에 있던 아빠는 환호성을 질렀다. 옆 산모의 시어머니는 이상하다는 듯 가족을 바라봤다.

그토록 기다리던 딸이었다. 첫째인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부부는 딸 옷을 사뒀다. 엄마는 백화점에서 산 하얀 레이스가 달린 바구니에 주영을 뉘었다. 친정이 있는 부산에서 낳은 아기를 서울 집으로 데려올 때, 혹여 다칠까봐 산 바구니였다.

바구니에 담긴 작은 동생은 너무 예뻤다. 네 살 터울인 오빠는 동생이 좋았다. 한 번을 때린 일이 없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던 어느 날, 어린 오빠는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라는 물음에 “주영이랑 살게” 답했다. 오빠는 동생이 좋다고 하면 해줬다. 용돈을 달라면 주고, 생일 선물로 애플워치를 사달라면 사줬다. 과자 줄 테니 차를 태워달라고 하면 태워줬다. 오빠는 모두 ‘좋아서’ 했다. 그래서인지 주영은 사랑을 많이 받은 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2018년 여름, 친구들과 부산 여행을 떠난 이주영씨가 서핑하던 모습. 유가족 제공
2018년 여름, 친구들과 부산 여행을 떠난 이주영씨가 서핑하던 모습. 유가족 제공

주영은 캠핑을 사랑했다. 산에선 패러글라이딩을, 바다에선 서핑을 즐겼다. 조용한 오빠와 달리 동적인 주영은 가족을 대장처럼 이끌었다. 2021년 여름엔 ‘캠핑은 고생’이란 가족을 억지로 이끌고 경기도 포천 숲으로 갔다. 네 사람이 숲속 한가운데 앉아,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으며 술 한잔 걸쳤다. 아빠는 문득 진짜 행복했다. 나이 든 부모와 놀겠다는 딸이 고마웠다.

솔직하고 당당한 주영을 친구들은 ‘미운 짓을 해도 밉지 않은 아이’라고 표현했다. 여행을 가면 제일 좋은 자리에 누우면서 “내가 여기서 잘게” 했다. 그런데도 친구들은 주영이 좋았다. 주영이 남긴 물건은 그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문구류 디자인 사업을 하던 그의 달력엔 ‘발주’ ‘출고’ 등 업무 일정과 함께 친구들 생일이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모이면 친구들을 많이 웃겨줬다.” “임신한 친구한테 말은 무심하게 하면서, 산부인과도 같이 가고 이것저것 챙겨줬다.” “외모는 공주인데 성격은 아니었다.” 주영이 떠난 뒤 친구들이 남긴 기억이다.

주영은 대학에서 리빙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회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회사생활보다는 자기 작품을 직접 팔아보고 싶어 했다. 키우는 고양이 ‘민트’와 ‘초코’를 캐릭터로 만들어 스티커를 제작해 지인들에게 돌렸더니 반응이 좋았다. 곧 회사를 나와 문구류 디자인 회사를 창업했다. 프리랜서지만 ‘밥 먹는’ 시간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휴대전화 캘린더에 하루 10개 이상 할 일을 시간별로 빽빽이 썼다. 남양주에 사무실을 얻었고, 국내 최대 문구·도서류 판매 매장에 입점했다. 사업 초기 사무실 임차료 압박이 상당했을 텐데 가족에겐 내색도 없이 이겨냈다.

“딱 1년만 슬퍼하고, 딸을 잊고 살아줬으면”

주영이 가장 사랑한 풍경은 충북 충주호의 아침이었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는 충주호 한쪽에 캠핑용 의자를 펼치곤 했다. 아침 호수엔 물안개가 가득했다. 주영과 나란히 앉아 고요한 풍경을 바라볼 때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랑을 한다고 느꼈다. 둘이 충주호를 다섯 번이나 갔다.

그는 주영을 존경했다. 평범한 회사원인 자신과 달리, 주영은 도전적인 승부사였다. 주영이 문구류 회사를 창업한다고 했을 때 걱정되지 않았다. 주영이 얼마나 집념이 강한지, 계획적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4년여 만난 주영을 ‘다 안다’ 싶다가도, 때론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주영은 쇼핑을 좋아한다더니, 명품이 아닌 1만원짜리 가방을 잘 메고 다녔다. 세련된 카페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산에 오르고 호수를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그는 제주도 어느 인적 없는 숲에서,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배경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며 주영에게 프러포즈했다. 주영은 한 시간을 웃다가 울다가 하며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딱 1년만 슬퍼하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딸을 잊고 살아줬으면 좋겠다.” 주영의 부모님이 말했다. 주영이 떠난 지 100일이 다 됐지만,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났다.

1998년 여름, 설악산 가족여행 때 찍은 엄마 최진희씨와 주영씨의 모습. 유가족 제공
1998년 여름, 설악산 가족여행 때 찍은 엄마 최진희씨와 주영씨의 모습. 유가족 제공

연인과 웨딩드레스 구경하고 밤거리 거닌 게 잘못인가

28살 주영은 일순간에 가족의 식탁에서 사라졌다. 2022년 10월29일, 독일 출장을 끝내고 돌아온 연인과 웨딩드레스를 보러 나간 날,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오늘도 셋이 모여 네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신다. 가족은 네 다리를 가진 식탁인데, 다리 하나가 없어져 식탁이 중심을 잡을 수가 없네. 그 다리는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어. 영원히 한쪽이 기우뚱한 채로 갈 수밖에 없네.”(2022년 11월30일 엄마의 일기) ‘내 딸’ ‘그리운 내 딸’ ‘너무 예쁜 내 딸’ 엄마는 딸을 부르고 싶을 때마다 일기장에 ‘내 딸’을 썼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잊는다는 건, 시간을 잊는 일이었다. 아빠는 되뇌었다. “그냥 이 애는 어딘가 있는 거다. 잠시 집을 떠난 거다. 아직 안 들어온 거다.” 주영이 사라진 식탁에서 주영이 얘길 하면, 잠깐 자신을 속일 수 있었다. 주영이 했던 말과 행동을 더듬어가는 것, 반복적으로 복기하는 것, 주영의 아빠는 “뒷담화”라고 표현했다. 가족은 매일 밤 술에 취해 주영이 얘길 하다 정신과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새벽 두세 시가 되면, 쓰러지듯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아빠는 이태원에 달려갔다. 딸이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걸 봤다. 얼른 차에 실어 병원으로 옮겨야겠다 싶었는데, 경찰은 단호하게 막아섰다. 들어가면 딸이 위험하다고 해서 참았다. 딸이 옮겨졌다는 인근 체육관에 갔을 때도 딸을 볼 수 없었다. 아침이 됐는데 자꾸만 신원확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옆에 있던 기자는, 유가족도 안내받지 못한 이송 병원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해, 결국 집으로 갔다. “자꾸 후회가 돼요. 딸을 보자마자 그냥 밀치고 들어갔어야 했는데.”(아빠 이정민씨)

아빠는 묻고 싶다. 주영이가 바다에 갔나. 산에 갔나.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연인과 웨딩드레스를 구경한 뒤, 서울 시내 번화한 밤거리를 거닌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일까.

손고운 <한겨레21> 기자 songon11@hani.co.kr

주영의 연인이 쓴 편지 ‘주영이와 결혼해야 하는 이유’

1. 이쁘다. 그냥 얼굴이 이뻐서 아침에 눈뜨고 깼을 때 안아주고 싶다.

2. 착하다. 심성이 착해서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나쁜 짓을 할 심성이 아니다.

3. 똑똑하다. 나보다 똑똑하다. 지니어스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기억력도 좋고 아이큐가 높다.

4. 사람을 가려 만난다. 못되고 나쁜 친구가 없으며, 남들이 하는 말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다. 자기만의 가치관이 있으며, 크게 변하지 않는다.

5. 다재다능하며 꾸준히 자기계발을 한다. 못하는 게 없다. 요리, 디자인, 운전, 방탈출 게임 등 다 잘한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다. 무언가 꾸준히 배우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치지 않는다. 대리만족을 느낀다. 나는 딱히 여러 일을 잘하지 않고, 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드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내 마음이 충족된다. 정말 잘해보라고 응원하게 된다.

6. 취미가 같다. 캠핑을 좋아하며,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있어 참 좋다. 운동도 잘하고 좋아한다. 등산, 러닝을 함께할 수 있어 좋다. 승부사 기질이 있어 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7. 민트초코(주영이 만든 문구류 캐릭터 이름)를 열심히 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열심히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도 성장시키기 위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디자인도 계속 고민한다. 책임감과 집념이 강하다. 무언가 할 때 대충 하지 않고 꼼꼼히 알아본다는 점에서 대견하고 본받을 만하다.

8. 믿고 신뢰할 사람이다.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준다. 어떤 일을 같이 하게 되면 ‘자기가 하겠다’ 하면 그냥 맡기고 따르면 된다. 계획적이어서, 여행 계획을 짜도 제대로 짜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다. 그냥 의지가 된다. 나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그냥 신뢰가 간다.

9. 사랑한다. 그냥 사랑한다.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에게 큰 힘이 된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다. 진심이다.

10. 가치관이 비슷하다. 얘기를 주고받으면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다. 그래서 의견 대립이 크게 없다. 누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비슷하게 생각하며, 바라보는 시선이 같다. 화합하며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기타 30가지가 넘지만, 한번에 모든 걸 알려주면 재미없기 때문에 여기까지 해보겠다. 사랑해.

엄마 최진희씨의 일기

2022년 11월11일

너무 파란 하늘이, 너무 맑은 날씨가 날 서럽게 한다. 그 속에 네가 없음이 나를 분노하게 한다. 주영아. 사랑하는 내 딸아.

11월12일

오늘은 네 사무실에서 네 모든 작품을 정리하며 친구들에게 보내줄 선물을 정리했단다. 그 모든 걸 보면서 ‘정말 고생했겠구나’ 싶으면서도 대견스러웠다. 그 모든 게 너의 손끝에서 나오다니. 그립구나 주영아. 사랑하는 내 딸.

11월17일

거의 매일 술을 마시네. 마시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밤. 오늘도 네가 어디선가 나타날 것만 같구나. 네 동영상을 보면 넌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웃고 떠들며 말하고 있구나. 너무나 이쁜 내 딸….

11월20일

또 하루가 가는구나. 너에게 줄 꽃을 사서 가는 길 왜 자꾸 눈물만… 너무 갑자기, 너무 어린 나이에 유예 없이 맞닥뜨린 고통들. 오빠는 신은 없다고 하는구나. 허나 엄만 이 또한 신의 섭리이지 않을까 하다가도, 정말 너무 무심한 하늘이구나.

12월15일

그리운 내 딸아. 오늘은 눈이 펑펑 왔단다. 첫눈이 오면 넌 연인과 만나거나 밤새 통화를 했겠지. 오늘도 엄만 널 그리며 추운 거리를 헤매기도 하고, 널 위한 국화도 샀단다. 잘 지내고 있니. 날이 너무 추워. 네가 있는 곳도 이리 추울까? 녹사평에 너와 친구들을 위한 분향소가 차려졌단다. 네 사진이 여름옷이라 아빠가 네가 추울까 너무 많이 울고 있더라.

2023년 1월11일

주영아 내일 청문회 마지막 날이네. 청문회가 아닌 공청회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우리 잘해볼게. 빌어주렴. 어제도 오늘도 널 보러 온 네 남자, 언젠가 놔주렴. 오늘도 널 그리워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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