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출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시내를 뒤덮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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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18일, 대구 지하철 참사 19주기 추모식에 참여하기 위해 대구로 갔다. 추모식에 가기 전 참사가 발생한 중앙로역에 들렀다. 마침 지나가던 젊은 남성 둘이 하는 대화가 들렸다. “왜 불이 난건데?” “어떤 정신병자가 석유를 지하철 안에 뿌려서 불을 냈는데, 마침 반대편에서 지하철이 들어왔대. 불이 반대편 지하철에 옮겨붙었는데, 기관사가 지만 살겠다고 열쇠를 빼고 도망가 버렸대. 그래서 사람들이 갇혀 싹 다 불에 타 죽었대.”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서사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정신병자’의 방화범죄, 둘째 기관사가 마스콘(마스터 컨트롤러)키를 뽑아 도주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참사. 이러한 서사는 2003년 참사 당시 언론에 의해 집중적으로 보도되어 사회적으로 각인된 채 지속되고 있다.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회적 참사에 단일한 원인은 없다. 수많은 인과관계와 개연성이 얽혀 위험은 대형 재난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기억하는 재난서사는 이토록 납작하게 구성되었다.
참사의 처음은 우발적 방화로 시작됐다. 방화범 김아무개씨는 1079호 전동차에 탑승해 갖고 왔던 4리터가량의 석유에 불을 붙였다. 김씨의 정신병력은 2001년 두통과 현기증으로 치료약 2일분을 처방받았던 기록이 전부였음에도 당시 언론은 김씨를 ‘정신이상자가 불특정 다수에게 행한 증오범죄’로 단정했다. 참사가 발생한 다음날 언론은 “방화 용의자는 정신병력이 의심되는 50대 장애인”, “전동차서 정신질환자 방화” 등의 보도를 쏟아냈다.
우발적 방화가 참사의 도화선이 되었지만, 모든 방화가 참사로 이어지지 않는다. 가령 대구 참사 1년 뒤 홍콩 지하철(MTR)에서도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홍콩 지하철은 14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차이가 어디서 기인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진상규명’의 핵심이다. 그러나 대구 참사 당시 ‘정신질환자에 의한 우발적 방화’는 ‘무책임한 기관사’로 비난의 화살이 옮겨졌다.
1079호 전동차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인 순간 맞은편에서 1080호 기관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했다. 1080호 기관사는 종합사령실로부터 “중앙로역에 화재가 발생했으니 조심히 들어오라”는 지시를 받은 터였다. 화재가 발생했으니 ‘운행을 멈추고 대기하라’는 지침이 아니었다. 1080호가 중앙로역에 진입했을 때는 이미 매캐한 연기가 승강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동차 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연기가 빨려 들어왔다. 기관사는 급하게 다시 문을 닫고 중앙로역을 빠져나가려는 시도를 했다. 한번, 두번, 세번. 이미 불길이 번진 전동차는 전원이 들어왔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결국 1080호 기관사는 출입문을 개방하고 마스콘키를 뺀 뒤 주변 승객과 함께 대피했다. 그러나 이미 불이 붙은 1080호 출입문은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전동차 안에는 더 많은 승객들이 갇혀 있었다. 그 결과 192명 희생자 중 1080호 전동차 안에서만 142명이 사망했다.
‘승객을 구조하지 않은 채 도주한 기관사’가 참사를 키웠다는 내용이 일제히 보도되었다. 참사의 모든 책임은 ‘정신질환자’와 ‘기관사’에게 돌려졌다. 두 기관사를 포함한 대구지하철 노동자 8명은 즉각 구속되어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최고 수준의 형량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은 벌금 300만원, 대구시장은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 법원은 대형 참사의 구조적인 원인보다 현장 노동자들의 부도덕한 직무유기로 참사의 책임을 종결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대구지역 시민대책위와 유가족협의회가 꾸려졌다. 시민대책위는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불에 잘 타는 전동차 내장재’를 지목했다. 당시만 해도 전동차 의자는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이 아니라 불에 잘 타는 가연성 내장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로템 등의 전동차 제작사가 홍콩, 인도 등에 수출하는 전동차는 1량당 가격이 18억~20억원인 반면 대구지하철 납품 가격은 1량당 6억원이었다. 값싼 난연재와 가연성 재질을 선택해 납품단가를 줄였다.
시민대책위와 유가족은 이러한 전동차가 합법적으로 만들어지고 운행된다는 점을 제기했다. 전국 모든 지하철의 문제였다. 1994년 제정된 ‘도시철도차량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전동차 내장재는 ‘불연재 또는 난연재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고, 내장재 재질이나 난연성능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조차 부재했다. 참사 이후 감사원은 6개 지역 전동차를 표본조사했다. 인천 지하철을 제외하고 모두 불량한 내장재들투성이였다. 그중 대구 지하철이 가장 심각했다. 내장재 불량률 100%, 단열재 불량률 71.4%. 대구 지하철에서 왜 하필 대형 참사가 발생했는지 구조적인 원인의 일부가 드러났다.
참사 이후 전국의 지하철 내장재가 전면 교체되고, 화재 대응을 위한 안전장치가 강화되었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의자로 교체되었고, 위기시 수동으로 문을 열고 탈출할 수 있도록 눈에 잘 띄는 곳에 수동조작 설비가 마련되어 있다. 부실한 법·제도도 보완되었다. 지하철은 ‘보다’ 안전해졌다. 그럼에도 ‘충분히’ 안전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전한 지하철을 위해서는 모든 위험을 수면 위에 올려놓고 안전을 우선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히려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은 더 많이 감축되고 외주화되었다. 무인열차가 운행되고 있고 무인역사도 운영되고 있다. “화재가 났으니 조심해서 들어오라”는 모순적인 지침은 현장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정시운전이라는 철칙은 변경되지 않았다. 대신 안전이 괄호 쳐졌다. ‘(안전)한 정시운전’은 여전히 현장 노동자들에게 딜레마적 상황에 놓이게 하고 사고가 나면 노동자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구실이 된다.
전국의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은 매년 대구를 찾는다. 대구시가 여전히 20년 전 유가족과 했던 약속을 이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팔공산에 자리한 추모비는 희생자들의 이름만 덩그러니 새겨져 있을 뿐,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 추모비’ 이름조차 붙이지 못하고 있다. 희생자 묘역은 제대된 묘비 없이 방치되어 있다. ‘추모’라는 두 글자가 여전히 공식화되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왜 그토록 추모사업의 제자리 찾기를 염원할까? “우리 아이는 위험한 사회에서 죽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리 아이 죽음으로 더 안전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우리 아이 죽음이 헛되지 않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가족 황명애씨는 제대로 된 추모관에서 ‘참사 해설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를 거쳐 이태원 참사 한복판에서 다시 대구 지하철 참사가 돌아오고 있다. 우리 사회는 스무번째 참사일에 유가족의 목소리를 온전하게 경청할 수 있을까.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