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으로 결국 사퇴했다. 가해 학생 쪽에서 징계에 불복하는 경우가 간혹 있긴 하지만 정 변호사의 경우처럼 대법원 상고심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평가다.
여기에 일부 금전적 능력이 있는 부모가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에서 소송전을 불사하면서 관련 법률 시장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학교폭력 사건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한변호사협회에 전문분야를 ‘학교폭력’으로 등록하고 활동하는 변호사는 총 17명으로 2019년 4명에 견줘 4배 이상 늘었다. 각 로펌에서는 ‘학교폭력 전담팀’을 구성하고 있으며, 학교폭력과 같은 청소년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법률사무소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추세 속에 발맞춰 서울행정법원은 이달부터 처음으로 ‘학교폭력 사건’ 전담재판부를 신설했다. 또 종전 합의재판부가 아닌 단독재판부가 학교폭력 사건을 담당하도록 해, 사건을 좀 더 전문적이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폭력이 신고되면 교내 전담기구에서 사건을 조사한 뒤, 사안이 중요한 경우 각 교육지원청에 설치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를 열게 된다. 학폭위가 의결한 가해학생 조치에 불복할 경우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정 변호사 아들의 사건은 2020년 3월 학교폭력예방법 개정 이전이기 때문에, 지금은 사라진 학교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징계를 밟은 다음 재심과 재재심을 거쳐 불복절차로 나아갔다. 재심과 재재심 절차도 법률 개정으로 현재는 폐지됐다.
2019년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의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자치위원회가 의결한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해학생이 불복해 재심·행정심판·행정소송을 한 경우는 10.5%, 피해학생이 불복절차를 밟은 경우는 5.3%로 집계됐다.
학교폭력 사건 경험이 많은 변호사들은 가해학생 쪽의 소송 목적은 ‘시간끌기’라고 입을 모았다. 학교폭력 4호(사회봉사)·5호(특별교육)·6호(출석정지)·8호(전학)에 해당하는 조치를 받을 경우 일정 기간, 9호(퇴학)는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특히 입시를 앞둔 경우 상급학교 진학에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 아들의 경우 2017년 5월부터 사건이 발생했고 2018년 3월 자치위원회가 강제전학 등을 조치했지만 재심과 재재심을 거쳐 행정소송 1심과 2심 과정에서 ‘본안 판결 전까지 전학조치 등을 중단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각각 제기했다. 결국 2심 판결 직후인 2019년 2월에서야 전학 조치가 이뤄졌고, 대법원은 그해 4월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했다. 학교폭력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이호진 변호사는 “소송으로 나아가더라도 1심에서 끝나는 경우가 가장 많고,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평가했다.
양나래 변호사는 “학폭위 결과에 불복해 행정소송하는 경우는 대부분 입시를 앞두고 시간을 끌면서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지 않으려는 목적”이라면서 “금전적 여유가 있는 부모는 아이 문제에 돈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결국 어른들의 감정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학교폭력 사건을 둘러싼 소송전 속에서 정작 아이들은 화해나 반성 같은 교육의 기회는 잃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교폭력 사건 경험이 많은 다른 한 변호사는 “학교나 교육청 입장에서는 교육적 목적으로 학교폭력 사건을 처리하려는데 변호사가 개입하면서 학생들에 대한 선도, 교육, 보호는 요원해지고 외부 싸움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고민이 크다”라고 전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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