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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투잡’해도 엄마 통장엔 30만원, 반지하방에 6살 딸이 ‘빛’이다

등록 2023-03-06 14:59수정 2023-03-07 02:49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미혼모 시설서 태어난 아이
아이 아빤 돌 뒤로 ‘노름빚’
홀로 선 엄마 통장엔 30만원뿐
200만원 부족해 반지하 생활
직업교육도 병원도 엄두 못내
경기도 부천의 한 다세대 반지하 셋방에서 선아(가명)가 침대 머리맡에 놓인 자신의 인형을 정리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경기도 부천의 한 다세대 반지하 셋방에서 선아(가명)가 침대 머리맡에 놓인 자신의 인형을 정리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17년 6월 태어난 선아(가명·6)의 첫번째 집은 인천의 한 미혼모 시설이었다. 당시 스물다섯이던 엄마는 선아를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낳기 전부터 아이와 이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엄마는 선아를 입양 보내려고 출산 한달 전에 시설에 입소했다. “시설에 있으면 아이를 바로 데려가지는 않아요. 누군가 아이를 선택하기 전까지 몇달은 아이랑 같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선아랑 같이 있다 보니까 정이 들었어요. 다른 가정에는 못 보내겠더라고요.”

지난 2일 오전 경기도 부천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방에서 만난 엄마 이아무개(31)씨가 이렇게 말했다. 긴 머리를 높이 올려 묶은 선아는 엄마 쪽으로 와서 “일기를 쓰겠다”며 다이어리를 챙겨 갔다. 낯선 사람들이 갑자기 찾았는데도 선아는 밝게 웃었다. 엄마의 걱정과 달리 선아는 별다른 투정도 없이 잘 자라줬다. 엄마는 “운이 좋게도…”라며 말을 흐렸다.

20대 옷가게 사장님이었지만

2011년 2월, 이씨는 고등학교 교복을 벗은 뒤로 남들보다 빨리 사회에 발을 내디뎠다. 다른 친구들이 전공 서적을 살 때 이씨는 가게에서 옷을 팔았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옷 파는 일은 어느새 ‘내 일’이 됐다. 2013년 본인 명의로 세운 가게에서 2년간 한달에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으면 500만원까지도 벌었다. 당시에 돈은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다 이씨는 갑작스럽게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했다. 이씨는 그때부터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했다. 2016년 12월 병원을 찾았지만, 선아가 이미 어느 정도 형태를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임신중지를 하면) 아이를 화장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이씨는 병원을 나왔다. 이씨는 반년 뒤 선아를 낳았다.

선아가 눈에 밟혀 입양을 포기한 뒤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온 엄마는 “남들처럼 산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아이가 태어난 뒤 택배 일을 하던 아이아빠는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생계비를 벌어왔다. 하지만 선아의 돌이 막 지난 뒤부터 선아 아빠의 이름으로 벌어온 돈은 가족의 곳간을 채우지 않았다. 아빠는 밖에서 밤새우는 일이 잦았다. 그의 노름빚은 이씨가 20대를 갈아 넣어 만든 통장 잔액을 모두 비웠다. 그들은 자주 다퉜다.

선아가 두 발을 딛고 스스로 일어설 때, 결국 엄마는 넘어졌다. “이제 나 너랑 못 살겠어. 선아는 나 혼자 키울게.” 엄마는 선아 아빠에게 마지막 통보를 했다. 엄마는 그와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혼인 신고는 하지 않았기에 번거로운 행정 절차는 없었다. 다만 “아빠가 보고 싶다”는 선아의 말이 엄마는 늘 마음에 걸렸다. “아빠는, 좀 멀리 일하러 갔어. 오래 걸릴 거야.” 엄마는 언제쯤 선아에게 고백할지 고민하고 있다. 평소에 떼를 쓰는 일이 없던 선아는 아빠가 보고 싶을 때 운다.

경기도 부천의 한 다세대 반지하 셋방에서 이아무개씨가 딸 선아(가명)의 어린이집 등원을 위해 가방을 점검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경기도 부천의 한 다세대 반지하 셋방에서 이아무개씨가 딸 선아(가명)의 어린이집 등원을 위해 가방을 점검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홀로 선 엄마, 통장엔 30만원

이씨가 홀로서기를 시작할 때 통장에는 30만원이 남았다. 그는 일찍 아버지와 연을 끊었고 어머니와는 가끔 안부만 묻는다. 선아 아빠와 최종 결별을 선언한 뒤로는 시가와의 인연도 끝났다. 생활비를 좀 보내달라고 연락해보기도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이씨의 홀로서기는 직간접적으로 부모의 도움을 받는 다른 20대와 달리 더 잔혹했다. 모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 집을 찾아야 했고, 먹을 것을 구해야 했다. 엄마는 고민을 거듭하다 지인에게 손을 벌렸다. 그렇게 빌린 돈으로 월세 보증금을 내며 몇달을 살 수 있었다. 이씨가 벌어오는 돈은 족족 빚을 갚는 데 썼지만,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엄마는 평일이면 선아를 오전 11시에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주변 패스트푸드 가게로 출근한다. 이전에 다녔던 공장은 어린이집 시간이 맞지 않아 그만뒀다. 저녁 7시쯤 일을 마친 뒤에 선아를 데리고 집에 가 저녁을 먹이고 재우면 엄마는 다시 출근 준비를 한다.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하는 편의점 새벽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두 탕을 뛰는 월요일, 화요일은 일이 끝나면 ‘파죽음’이 된다. 코피를 쏟으면서 이씨가 매달 손에 쥐는 봉급은 180만~190만원이다. 공과금, 월세, 어린이집 원비를 내고 남은 돈은 고스란히 빚을 갚는 데 썼다. “병원은 가 볼 생각도 안 해요. 선아가 치아가 안 좋다고 했는데 치료비가 부담돼 가지도 못했네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엄마는 스스로 돌볼 여유는 전혀 없다고 했다.

은행도 이씨를 외면했다. 이씨가 20대 초반 지인이 ‘통장을 빌려달라’고 했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은 부메랑이 돌아온 것이다. 그의 통장이 범죄에 연루되면서 결국 벌금형이 내려졌고 일반 통장은 쓰지 못하게 동결됐다. 카드사와 캐피털 등 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썼고, 현재 이씨가 해결해야 할 빚은 1700만원으로 불었다. 현금이 없을 땐 휴대전화 소액결제를 했다. 모바일 상품권을 사서 다시 파는 식으로 일종의 ‘깡’을 한 셈이다.

공과금도 밀리면서 지난달은 차가운 바닥에서 전기장판에 의존하면서 선아와 보냈다. “밀린 공과금 다 낸 지 얼마 안 됐어요. 이제 난방은 잘 나오네요.” 엄마는 늘 있던 일인 듯 얘기했다. 최근에는 난방비가 올라서 고민이었다. “아낀다고 아꼈는데도 많이 나와요.” 다행히 시에서 저소득층에 난방비 일부를 지원해주는 사업에 선정되면서 한시름 덜게 됐다.

경기도 부천의 한 다세대 반지하 셋방에서 엄마와 함께 사는 딸 선아(가명)가 어린이집에서 만든 엄마에 대한 사랑이 담긴 그림이 놓여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경기도 부천의 한 다세대 반지하 셋방에서 엄마와 함께 사는 딸 선아(가명)가 어린이집에서 만든 엄마에 대한 사랑이 담긴 그림이 놓여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보증금 200만원 부족해 반지하로

“도움을 받을 여건이 되는 상황이 아니죠.” 월세가 몇번이나 밀려 도망치듯이 집을 옮겼다. 2021년 12월 빌라 2층에서 지금 거주하는 반지하로 내려오자 굳세게 마음을 다잡고 선아를 키우겠다는 마음도 약해졌다. 집주인은 이씨가 월세를 자주 밀리자 지하로 내려가 달라고 했다. 볕이 잘 들어오던 2층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5만원. 반지하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5만원이었다. 이씨는 “쉬지 않고 일했는데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결국 이렇게 반지하까지 내려오니 마음이 더 힘들었다”고 했다.

보증금 200만원만 더 있었다면 지킬 수 있던 엄마의 자존감은 무너졌다. “일을 안 하는 시간에는 그냥 누워 있어요. 무기력증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선아가 배고프다고 얘기하면 ‘엄마 좀만 쉴게’라고 해요.” 엄마는 선아와 놀아주지 못한다는 죄책감도 잊을 만큼 지쳤다. 그사이 선아는 익숙하게 혼자서 일기를 쓰고 스케치북에 색깔을 채웠다.

엄마의 끼니는 라면이다. 싸고, 빨라서다. “조금만 더 벌었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큰 욕심보다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랐다. 직업교육을 받아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싶어도 당장 눈앞에 놓인 생계를 꾸리기 위해선 여유 시간을 확보할 수가 없다. 선아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니 그에게 교육은 사치였다.

“누구나 힘든 세상이라지만, 정말 힘들어요. 이런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심적으로 불안하기도 하고요. 불안증세도 있었고 호흡도 곤란해진 적이 있어서 약을 먹기도 했어요.” 이씨는 자기 전에 매일 생각한다. “오늘은 걱정이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선아에게 해준 게 없다는 사실이 가장 가슴이 아팠다. 선아가 이 세상에 태어난 뒤로 모녀는 추억을 쌓을 시간조차 없었다. 따뜻한 볕도 절반만 들어오는 반지하 방이 그들이 추억을 다질 유일한 안식처다. “기억나는 게 잘 없네요. 작년에 아는 분께서 선아 보러 가라고 아쿠아리움 입장권을 보내줘서 같이 갔던 게 유일한 것 같아요. 그때 선아가 정말 좋아했어요.” 그래도 엄마는 선아 덕분에 힘을 조금이라도 낸다. “선아만 아니었어도 저는 그냥 더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지 않았을까요.” 엄마는 걸어가는 선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선아네 가정에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국민은행 012501-04-327341 예금주: 사회복지법인굿네이버스).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굿네이버스(1544-7944)로 문의해 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굿네이버스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20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선아네 가정의 주거유지비, 생필품 지원비, 긴급생계비로 쓰이고, 2000만원 이상 모금되면 선아네 가족처럼 어려운 가정에 지원됩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함께한 ‘2023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램 섀퍼 증후군’ 및 ‘거짓저알도스테론증’을 앓고 있는 미소천사 은우의 사연(<한겨레> 2월6일 12면)을 전해드렸습니다. 은우의 사연이 소개된 뒤 1151분께서 “미소천사 은우에게”, “은우, 파이팅!”, “건강하게 자라자, 은우”라는 따뜻한 응원 메시지와 함께 1681만4100원(3월3일 기준)의 정성을 모아 재단에 전해주셨습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소중한 후원금은 은우의 특수치료비, 치료부대경비, 보육비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보내주신 후원금 중 목표액을 초과한 금액은 은우처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저소득가정 아동을 돕는 데 사용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은우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귀중한 나눔을 결심하고 실천해주신 모든 후원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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