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주에 쓸 수 있는 최대 노동시간을 69시간까지 늘리되, 장기휴가를 활성화하는 등의 방안을 담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내놓자, 현실성 없는 ‘탁상공론’이라는 직장인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일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가 발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은 현재 최대 52시간인 한 주 노동시간을 69시간(주 6일 기준)까지 늘릴 수 있고 대신 장기휴가를 활성화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직장인들은 당장 노동시간이 늘어날 수 있게 된 데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정아무개(37)씨는 7일 <한겨레>에 “주 52시간 체제에 적응하면서 퇴근 후에 공부도 하고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서 업무 효율이 늘었는데, 다시 전처럼 종일 일만 하던 시기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사흘 연속 밤샘 노동 길 터주는 거 아니냐”, “바쁠 때 초과근무를 시킬 수 있으면 기업은 인력을 줄여서 운영할 것이고, 근로자는 69시간 일하고도 휴가 내놓고 출근하게 될 것” 등의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정부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하며 장기휴가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직장인들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김다은(32)씨는 “탁상공론의 전형적인 모습 같다. 평소에도 휴가 쓰면 눈치 주는 곳이 많은데 실질적으로 장기휴가가 보장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티(IT) 기업 신입사원인 김아무개(30)씨는 “업무 공백 때문에 연차도 눈치 보느라 다 못쓰는데, 근로시간과 휴가는 선진국을 못 따라가는 상황에서 시간만 늘리는 현실성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온라인에도 “애초에 한 사람을 주 69시간이나 굴릴 회사라면 휴가도 제대로 보내줄 수 없는 곳인데 웃기지도 않는 소리”라는 의견이 올라왔다.
이와 관련 임규호 노무사(포스원 노무법인)는 “종속적인 관계에 있는 근로자의 경우, 장기휴가를 신청할 때 사용자로부터 거부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생활에서 부당 전직, 해고, 승진배제 등 불이익한 차별적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며 “장기휴가를 준다고 해서 근로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도 이날 논평을 내어 “노동자들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단기간 집중 장시간 근로를 실체적·절차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방책에 불과하다”며 “정부의 이번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을 ‘장시간 근로제’의 추진으로 규정하며, 사용자의 입장만을 대변하여 사용자의 근로시간 선택권만을 절대적으로 강화하려는 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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