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씨가 지난 2015년 7월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마장마술 경기에 참가하고 있다. 과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뇌물로 제공한 것으로 인정된 말이 여전히 삼성 쪽에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와 관련한 재산을 국고로 귀속하는 몰수 판결이 확정됐지만, 검찰이 2년 동안 절차를 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이 뒤늦게 몰수 집행에 나서면서 그간 대신 말을 관리했던 삼성 쪽에 지급해야 하는 나랏돈만 수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은 이 회장이 정유라씨에게 제공했던 말 ‘라우싱’에 대한 몰수 판결이 확정된 지 2년 만인 올해 초 몰수집행을 시작했다. 라우싱은 삼성이 정씨에게 건네준 마장마술용 말 3마리(살시도, 비타나, 라우싱) 중 한 마리로 몸값이 50만 유로(약 7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말이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회장이 정씨에게 지원한 말 3마리 구매대금 34억1797만원 상당은 원활한 그룹 승계작업을 위한 뇌물이라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도 뇌물이 맞는다고 판단함에 따라, 2021년 1월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라우싱 몰수를 명령했다. 말 3마리 중 라우싱만 삼성에 반환된 탓에 몰수 대상은 라우싱으로만 한정됐다. 다른 두 마리는 정씨 쪽이 다른 말로 교환해 한국에 남아있지 않다.
이 판결은 이 회장이 재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문제는 특검은 특정 사건에 한해 수사·기소권을 갖기 때문에 판결이 확정된 뒤 선고 내용을 이행하는 ‘재판 집행’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징역형 집행이나 몰수 집행 등은 검찰에서 하게 된다.
그러나 이 회장 사건의 재판집행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은 판결 확정 2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라우싱 위탁·보관을 위한 예산 신청 등의 절차에 들어갔다. 검찰 설명을 종합하면, 살아있는 생물에 대한 몰수는 생물을 보관할 장소를 찾아 위탁 관리하면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공매를 맡기고, 매각이 이뤄져 현금화되면 이를 국고에 귀속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현재 검찰이 진행 중인 절차는 몰수집행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는 단계인 셈이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은 특검 파견 검사로부터 말을 몰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통보받았다고 해명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특검에 참여했던 검사로부터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다음에 (몰수해야 한다는) 통보가 온 것은 맞다”며 “통보받은 즉시 위탁·보관 절차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확정판결이 있은 지 몇년이 지나고 검찰이 뒤늦게 몰수에 나선 이 상황 자체가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과거 한 특검에 참여한 적이 있는 변호사는 “특검에 파견됐던 현직 검사들이 재판에 참여했던 이상 몰수 판결을 몰랐을 리 없는데, 2년 동안 검찰의 집행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게 무슨 상황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대통령이 곧바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특검 특별수사관 경력이 있는 또 다른 변호사는 “몰수는 절차 진행에 인적·물적 자원 투입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특검에서는 할 수가 없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집행을 누락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연유로 누락했는지는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현재 라우싱은 삼성에서 보관하고 있다. 검찰이 2년간 이 말을 몰수하지 않으면서 삼성에서 관리비용만 5천~6천만원을 썼다고 한다. 검찰의 집행 지연으로 삼성이 쓴 관리비용을 어떻게 보전해줄 것인지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서울중앙지검 쪽은 “법무부에 예산 배정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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