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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물가지수가 3% 이상 인상되면 갑과 을은 공사비를 협의 조정한다.’ 지난달 28일부터 아파트 입구가 컨테이너로 막혀 예비 입주자들의 이사가 가로막힌 서울 양천구 신목동 파라곤아파트 미입주 사태는 시공사와 재건축 조합간 계약서에 쓰인 이 한 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비롯됐다. 현재 양쪽은 공사비 증액 수준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벌이고 있다. 시공사 동양건설사업은 자잿값 인상 등을 고려할 때 공사비를 106억원을 늘려야한다고 조합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조합은 계약서에 적힌 대로 소비자 물가지수를 기준으로 금액을 조정해야 한다며 106억원은 과도하다고 본다. 동양건설산업 쪽은 ‘소비자물가지수 3%’는 협의 조정을 개시하기 위한 요건일 뿐, 건자잿값·노무비 인상 등이 반영된 건설공사비지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사비가 큰 폭으로 올라 공사를 할수록 손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평행선을 달리던 양쪽은 결국 시공사가 유치권을 행사하며 ‘제3자’인 일반분양자들의 입주마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공사비 분쟁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지난해 3월, 서울 성북구 보문2구역 재개발(보문리슈빌하우트) 사업장은 시공사가 입주예정일을 앞두고 공사비 문제로 ‘입주 불가’ 통보를 했다가 조합과 극적으로 타결했다. 단일 아파트 단지로 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 파크포레온) 사업장에서도 시공사들이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공사를 중단했다가 6개월만에 재개되기도 했다. 분쟁의 배경엔 2020년을 전후로 크게 변화한 국내외 경제 상황이 있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철근 등 자잿값이 큰 폭으로 올랐을 뿐 아니라, 노무비·금리 인상 등으로 공사비가 대폭 오른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원청인 시공사에 하청 전문건설업체들이 모인 철근·콘크리트 연합회가 마찬가지 이유로 하도급 대금 인상을 요구하며 공사현장에서 작업을 중단했다. 이처럼 당분간 서울 시내에서 준공을 앞둔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 ‘공사비 증액’을 두고 각종 분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조합과 건설사 사이의 사적 계약에 공공이 개입할 수 있는 법적·행정적 권한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공공이 발주한 공사의 경우, 단품 슬라이딩 제도(건설공사에 쓰이는 특정 자재 가격이 급등할 경우 그 자재에 대해 공사비를 증액해주는 제도)를 통해 철근·콘크리트 등 자잿값 인상분을 공사비에 반영할 수 있다. 반면 민간 공사에는 이 제도가 의무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물가 인상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의 기준도 사업장마다 제각각 다르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산업정책연구실장은 “최근 몇 년간 도시정비·재개발·재건축 사업이 크게 느는 등 민간 공동주택 공사가 많았는데, 공공처럼 (민간은) 물가 변동에 따른 계약금 조정과 관련된 구체적 방법이 규정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산정 방법과 폭을 두고 다툼이 계속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간 공사의 경우, 기존에 관련 제도의 정비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짚었다. 사적 계약인 탓에 정부와 지자체도 개입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에 입주 지연으로 개개인은 자녀 학업에 차질이 생기는 등과 같은 피해가 많지만 구제되기 어렵다. 지자체가 실제 그 지역에 살지 않는 입주자의 전입신고를 받아줄 수 없을뿐더러, 재난으로 주거가 불가능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시주거시설을 제공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고육지책’으로 갈등 중재 기구를 설치해 시공사와 조합의 이견을 줄이는 데 힘쓰고 있다. 서울시 재정비촉진사업과 관계자는 “사유재산 침해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공공이 개입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피해가 예상되는데 공공이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딜레마’에 놓인 상황을 설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단순히 특정 한두 곳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공공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시 안에서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지난 9일 공사비 분쟁에 대응하기 위해 회계사·변호사 등이 참여하는 공사비 갈등 중재 자문기구를 설치하고, 정비사업 코디네이터 파견 확대 등을 발표한 바 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