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사거리 앞에서 청량리·제기동 일대 노점상인 80여명이 ‘동대문구청 노점 강제철거 규탄’ 집회를 열었다. 박지영 기자
“특사경까지 투입한 구청 실태조사에 노점상인들 다 협조했습니다. 하지만 대화로 풀겠다던 구청은 지금 수십년 동안 장사해온 노점들을 한밤중에 무자비하게 철거하고 있습니다.” (정병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동대문·중랑지역연합회 지역장)
20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사거리 앞에 모인 80여명의 청량리·제기동 일대 노점상인들은 ‘동대문구청 노점 강제철거 규탄’ 집회를 열고 “구청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대문구청은 지난해 11월 ‘깨끗한 거리’를 만든다며 청량리·제기동 일대 노점 정비 사업에 나섰고 지금까지전체 400여개 노점 중 10% 수준인 40여곳을 철거했다.
길게는 수십년씩 영업을 이어온 이곳 일대 노점 상인들은 최근 들어 실질적인 생계 위협을 느끼고 있다. 동대문구청이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노점상 철거를 위해 수사·송치 권한이 있는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을 투입하면서 단속에 실질적인 강제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구청은 공무원이 현장 단속을 나가도 “상인의 인적사항 하나 확인할 수가 없어 후속 조처가 어렵다”며 검찰에 요청한 끝에 직원 7명에 대해 특사경 지명을 받았다.
19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인도에 늘어선 노점상들. 박지영 기자
이후 특사경 1명과 단속지원 인력 2명까지 ‘3인 1조’로 움직이며, 현장에서 운영자가 확인되지 않는 노점이나 30일 이상 방치되는 등 위반사항이 발견된 노점에 대해 행정대집행(철거)을 진행 중이다. 경동시장 앞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ㄱ(50)씨는 “장사하는 우리도 이곳 일대 도보 환경 안 좋은 거 알지만, 여기서 수십년 장사해서 먹고 살았는데 대안은 만들어 놓고 ‘나가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구청은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점 상인들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거리 가게 정비 자문단’이라는 협의체를 통해 합의점을 찾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노점상인들은 해당 자문단 구성위원을 모두 구청이 위촉하고, 논의 내용 또한 철거에만 맞춰 ‘불평등한 자문단’이라고 반발한다. 자문단은 구청 관계자와 동대문 구의원, 상인회장, 변호사, 교수, 시민단체, 시장 상인회장 등 모두 구청이 위촉한 위원 13명으로 구성됐다.
강호인 전국노점상연합 개혁연대 동대문·중랑지역연합회 사무국장은 “구청은 노점상인들을 ‘정비’의 대상으로만 보고 철거 당사자인 노점상인들은 자문단에서 배제했다”며 “노점상인들의 목소리가 논의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구청은 “노점단체 쪽에서 ‘정비를 우선하면 참여하지 않겠다’고 반대해 자문단에 들어가 있지 않다”고 했다.
박인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상생’ 협의체라고 하면 반드시 들어가야 할 이해관계자는 지역 점포 상인과 노점상 대표, 지역 주민을 말한다. 노점상인들의 생존권과 기존 점포 상인들과의 이해관계, 지자체의 보행권 개선 목적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으려면 각 지자체에서 조례 제정 등을 통해 협의체를 균형 있게 구성하고 이후 협의체가 결정한 내용을 구청이 이행할 수 있도록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19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인근 ‘청량리 도시환경정비사업’ 공사 현장 모습. 박지영 기자
동대문구청이 지난 17일 새벽 2시께 불법 노점을 철거한 뒤 배치한 화단. 박지영 기자
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