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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부모 빚, 손자녀는 안 갚아도 된다…부모가 상속 포기 시

등록 2023-03-24 05:01수정 2023-03-24 10:19

대법, 기존 채무승계 판례 뒤집고
“부모 상속 포기 땐 자녀도 적용”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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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2월, ㄱ씨는 5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할아버지 ㄴ씨가 2011년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가 확정돼 ㄷ사(회사)에게 갚을 돈이 있었던 것이다. 앞서 ㄱ씨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사망하자 상속을 포기했고, 할머니는 한정승인을 했다. ‘한정승인’은 물려받은 재산 범위 안에서 빚을 갚겠다는 뜻이다. 결국 아버지의 상속포기로 후순위 상속자가 된 ㄱ씨는 할머니와 함께 할아버지의 빚을 떠안을 처지에 놓였다. 이에 반발한 ㄱ씨는 “자신은 할아버지의 상속인이 아니다”라며 소송을 냈다.

“할아버지 빚, 손주는 안 갚아도 된다

ㄱ씨처럼 사망한 할아버지의 빚 상속을 아버지·어머니가 포기한 경우, 손자녀가 이를 갚아야 하는 것일까. 대법원은 이 경우 손자녀는 빚을 갚을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아버지·어머니가 할아버지·할머니 빚을 물려받지 않기로 했다면, 손자녀 역시 빚을 갚을 책임이 없다는 뜻이다. 8년 전 나온 기존 판례는 손자녀가 특정 기간 내 빚 상속 포기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빚을 상속받아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3일 ㄱ씨 등 ㄴ씨의 손자녀 4명이 낸 승계 집행문 부여 이의 신청(‘빚문서를 채권자에게 주지 마라’는 신청)에서 원고패소(손자녀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에서는 아버지·어머니가 할아버지(사망자)의 빚 상속을 모두 포기한 경우, 손자녀가 할머니와 함께 공동으로 빚을 상속받는지가 쟁점이 됐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아버지·어머니가 상속을 포기하면 손자녀가 할머니와 함께 공동 상속인이 된다. 빚까지 대물림된다. 이 사건의 경우 할머니는 한정승인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손자녀들이 문제가 됐다.

상속포기자 본래 뜻은 빚 대물림 끊는 것

대법원은 상속포기자의 의사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결과를 도출하는 기존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ㄴ씨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가 전부 상속을 포기하면, 손자녀가 있더라도 ㄴ씨의 배우자만 단독 상속인이 된다”며 “피상속인(사망자)의 자녀들은 빚이 자신은 물론 자신의 자녀(손자녀)에게도 승계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상속을 포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손자녀에게 빚이 공동 상속된다고 보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대와 사회 일반의 법 감정에 반한다”고 했다. 이어 “종래 판례에 따르더라도, 손자녀가 다시 적법하게 상속을 포기하면 결과적으로 사망자의 배우자만 단독상속인이 되는 실무례가 많이 발견된다. 이는 무용한 절차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으로, (판례를 변경해) 법률관계를 간명하게 확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가정법원 판사를 지낸 이현곤 변호사는 “상속인들이 법 규정을 혼동해 배우자가 한정승인하고, 자녀들은 상속을 포기하면 빚이 대물림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실제로는 손자녀들에게 채무가 승계된다. 손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할 기회마저 놓치면 빚을 떠안게 된다”며 “이번 결정은 이해하기 모호한 법률 규정을 정비했다는 점, 절차적으로 상속 처리를 잘못해서 손자녀들에게까지 빚이 대물림되는 폐해를 방지한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빚 대물림 방지 노력은 계속

‘빚 대물림’ 방지를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국회는 지난해 11월 미성년자 빚 대물림을 방지하는 내용을 담아 민법을 고쳤다. 개정안은 미성년자인 상속인이 성년이 된 뒤 물려받은 빚이 상속받은 재산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한정승인(‘물려받은 재산 범위 안에서만 빚을 갚겠다’)이 가능하도록 했다. 개정 전 민법은 미성년자 상속인이 제때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하지 않으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빚을 모두 떠안아야 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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