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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여성 성폭력 피해자 거짓말 탐지기 검사관, 절반 이상 남성

등록 2023-03-31 09:00수정 2023-03-31 15:01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회사 상사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오은미(가명)씨는 지난해 11월 한 지역 경찰청 검사실에서 거짓말 탐지기(폴리그래프) 검사를 받았다. 사건 발생 뒤 시간이 흘러 성폭력을 당했다는 증거가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낯선 공간과 몸에 부착된 기계 탓에 적잖이 긴장한 오씨는 검사관을 보고 더 당황했다. 검사관은 가해자와 비슷한 또래의 중년 남성이었다. 오씨는 “여성 검사관에게 검사를 받을 줄 알았는데 너무 놀라고 긴장했다”고 말했다.

전국 18개 시·도 경찰청에는 여성폭력 등 형사사건 관련 거짓말 탐지기 검사관이 총 41명 있다. 이 가운데 여성 검사관은 14명으로, 11개 경찰청에 배치돼 있다. 경남·광주·울산·전남·제주·충남 등 6개 지방경찰청에는 여성 검사관이 없다. 오씨가 검사를 받은 지역은 이 6곳 중 하나다.

30일 〈한겨레〉가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경찰청 자료를 보면, 2021년 8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성폭력 사건을 겪은 여성 피해자들이 받은 거짓말 탐지기 검사는 총 1317건으로, 이 가운데 남성 검사관이 조사에 참여한 건수는 절반이 넘는 707건이었다. 성폭력 사건을 수사할 때 1인 이상의 여성 경찰관이 참여하게 돼있지만,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여성 검사관이 담당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어 다수의 여성 성폭력 피해자가 남성 검사관에게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심리 변화를 측정하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 특성상 성폭력·가정폭력 등 여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와 같은 성별의 검사관에게 검사를 받을 경우 분석의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찬걸 대구가톨릭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진술 과정에서 심리 변화를 측정하는 게 거짓말 탐지기 검사”라며 “성별이 다른 검사관이 들어올 경우, 밝히기 싫은 사실을 말해야 할 때 심리 변화가 충분히 생길 수 있다. (피해자가) 당황하거나 수치심을 느낀다면, 오차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씨의 경우, 2시간 동안 진행된 거짓말 탐지기 검사에서 성폭력 피해 관련 진술 일부가 ‘거짓’이란 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폴리그래프 검사 결과 거짓 판정 나왔다”는 점 등을 이유로 오씨의 성폭력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씨는 “남성 검사관이 떠올리기 싫은 피해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질문했다”며 “2차 피해 교육을 제대로 받은 여성 검사관에게 검사를 받았더라면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심리적으로 조금이나마 편안한 상태에서 검사에 임할 수 있게 하려면, 여성 검사관 수를 확대하는 한편, 2차 피해 방지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해온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여성 검사관의 전체 수 뿐만 아니라, 이들이 여러 지역에 고르게 분포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찰도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거짓말 탐지기 검사관 양성을 위해 10명 중 8명을 여성으로 뽑아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음달 1일부터는 2차 피해 방지 교육을 받은 검사관에게 검사를 배당하는 등 ‘전문 검사관’ 제도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성폭력·가정폭력 등 여성폭력 사건 대상자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검사가 접수될 경우, 여성 검사관을 우선 지정하기로 했다. 다만 경찰은 전국 시·도 경찰청에 여성 검사관을 전부 배치하려면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양이원영 의원은 “여성 성폭력 피해자의 불편 호소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만큼 여성 검사관 인력이 증원될 수 있도록 국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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