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충북 단양군 도담역 광장에 줄 서 있는 벌크시멘트트레일러들. 최근 시멘트 공장의 재고가 없어 적게는 5시간, 많게는 10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지난 29일 낮 1시50분께 시멘트 공장이 있는 충북 단양군 도담역 앞 광장 앞엔 서른대가 넘는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30분 넘는 시간 동안 트레일러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사이 5대가 추가로 들어와 뒷자리에 섰다. 이날 도담역 첫 번째 순번 트레일러 기사 전아무개(57)씨는 아침 10시50분께 이곳에 도착했다. 3시간40분을 기다린 오후 2시30분께야 시멘트 공장 직원이 “준비하라”며 두드렸다. 그제사 운전대를 잡은 전씨는 공장 주변으로 이동했고, 1시간30분을 더 기다린 다음에야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평소엔 20~30분이면 끝날 일이지만, 이날 트레일러에 시멘트를 받기까지 6시간이 걸렸다. 전씨는 “어차피 일당도 안되니 ‘쉬면 안 되냐’고 하는데, 지금 쉬어버리면 관계가 어긋나 계속 일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며 “쉬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시멘트 공장의 재고 부족으로 시멘트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지역 건설현장 곳곳이 멈춰선 가운데, 이를 운반하는 트레일러 기사들 역시 장시간 노동과 소득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멘트를 받기 위해 공장 앞에서 ‘무한 대기’를 반복하는 탓에 노동시간은 늘었지만, 하루에 운반하는 시멘트 양은 줄어 수입은 40% 가까이 줄었다. 특수 트레일러는 특성상 다른 일감을 찾을 수도 없어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60대 트레일러 기사인 ㄱ씨 역시 월 매출이 1700만~1800만원에서 1000만원~1100만원 수준으로 줄었다. 과거엔 하루 3건 시멘트를 운반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긴 대기시간 탓에 1~2건으로 운송이 준 탓이다. 줄어든 소득에 매달 차량 할부금 300만원과 수백만원에 달하는 유류비, 보험료 등 고정비를 내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은 200만원 남짓이다. ㄱ씨는 “예전엔 하루 3탕 뛰는데 15~18시간 걸렸는데, 지금은 2탕 뛰는데도 26시간이 걸린다”며 “할부금을 내지 못해 차량을 팔겠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리를 비웠다가 순번을 놓치게 될까 기사들은 미리 간식을 챙겨 몇 시간씩 차에서 대기한다. ㄱ씨는 “10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다”며 “대기비를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순번을 놓칠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 23일엔 7시간을 기다리던 기사가 “10만원 주면 내 자리 내주겠다”며 다른 기사들에게 제안을 하기도 했다.
최근 시멘트 대란은 공장의 ‘시설 정비’ 문제가 크다. 대표적인 탄소배출 산업인 시멘트 업계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공장의 친환경 설비 설치를 진행 중이다. 현재 국내 시멘트 7개사가 보유한 소성로 35기 중 11기(31.4%)가 시설 보수에 들어간 상황이다. 통상 시멘트공장은 건설현장이 멈추는 비수기 ‘겨울’에 공장을 가동해 재고를 확보하는데, 시설 정비로 충분한 재고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공급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초 시멘트 공장의 생산설비 정기보수 등으로 일부 지역의 시멘트 공급에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충북 단양군 도담역 광장에 시멘트를 기다리는 벌크시멘트트레일러들이 기다리고 있다. 독자 제공
문제는 벌크시멘트트레일러는 다른 화물차와 달리 싣는 품목을 변경할 수 없어 ‘시멘트 부족’과 같은 예측하지 못한 외부 상황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특성은 동물사료를 담는 곡물트레일러나, 경유·휘발유 전용인 탱크트레일러도 마찬가지다. 특수트레일러 기사들은 ‘앞으로도 이 물건(시멘트)을 계속 실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공장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트레일러 기사 이아무개(59)씨는 “시작하면 업종을 바꿀 수도 없다”며 “기다리는 것으로 불만을 제기하면 업계에 찍혀서 일을 못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곡물트레일러 기사 김무성(52)씨 역시 “공급처에 전염병이 생기면 길게는 한 달간 일을 아예 못한다. 정해진 곡물만 운송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업체가 물량을 안 주면 일을 할 수가 없는지라, 불만도 낼 수 없다”고 했다. 박연수 화물연대 정책기획실장은 “특수차량은 갑질에 취약해 운임도 낮고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는 측면이 있다”며 “반면 이런 특수성은 뭉쳤을 때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이 단체성을 확보한다면 그런 취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단양/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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