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주택가에서 40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이아무개씨 등 3명이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납치·살인 사건 피의자 3명 중 주범으로 지목된 법률사무소 사무장 이아무개(35)씨가 과거 피해자가 운영하던 가상자산(암호화폐) 회사에 근무했고, 함께 가상자산 투자도 하며 돈거래 등으로 얽힌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은 범행을 주도한 혐의를 받는 이씨 배후에 ‘윗선’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관련자를 출국금지 조처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3일 언론 브리핑에서 “이씨가 2020년 피해자 ㄱ(48)씨가 일하던 코인 회사에 투자해 8천만원 손실을 봤고, 이후 해당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ㄱ씨가 이씨의 요구에 따라 (8천만원 손실 중 일부인) 2천만원을 지원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다만 경찰은 “돈거래와 관련해 현재까지 이씨의 일방적 진술만 있는 만큼 객관적 증거를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번 납치·살인 사건도 코인을 노린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인데, 주요 피의자들은 ㄱ씨 코인계좌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또 피의자들이 착수금을 받고 범행했다는 진술에 따라, 돈을 제공한 윗선을 추려 출국금지 조처하고 추적 중이다.
2021년 2월 이씨와 ㄱ씨는 제3의 인물에게서 가상자산을 빼앗은 혐의(공동공갈)로 함께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함께 투자한 가상자산이 폭락하자 제3의 인물이 시세를 조종한 것으로 의심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강남경찰서는 이씨 혐의만 인정해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서울 시내 여러 경찰서는 피해자가 연루된 여러 가상자산, 부동산 투자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이다.
경찰은 살인예비 혐의로 20대 1명을 추가 입건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날 추가 입건된 ㄴ씨는 피의자인 연아무개(30)씨, 황아무개(36)씨와 렌터카 업체 및 배달 대행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로 파악됐다. 경찰은 “ㄴ씨가 황씨로부터 ‘가상자산을 뺏은 뒤 승용차를 한대 사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범행에 참여했지만, 이후 미행과 감시가 힘들어 3월 중순께 범행에서 빠졌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연씨와 황씨는 이씨 지시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지만, 이씨는 모함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이씨 변호인은 “체포 당일에도 (이씨는) 경찰에 잡힐지 몰라 아내가 일하는 병원에 있다가 잡혔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은 ㄱ씨를 납치·살인한 혐의로 이씨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편, 경찰의 초동 대응 부실과 늑장 보고 논란도 제기된다. 경찰은 사건 발생 7시간이 지나서야 경찰서장 등 지휘부에 보고된 것과 관련해 감찰에 착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백남익 수서경찰서장은 범인들이 피해자를 살해한 뒤 대전에 암매장하고 지역을 빠져나간 뒤인 이튿날 아침 7시에야 첫 보고를 받았다. 백 서장도 “좀 더 빨리 보고가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보고를 받은 직후 형사팀 급파 등 추가 조처를 지시했다”고 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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