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다는 공인중개사 말만 믿고 계약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사회초년생이 대부분인 이들은 부동산거래에 동반되는 위험을 피하려고 중개수수료를 부담하며 전문가인 공인중개사를 통해 전세계약을 진행했다. 하지만 위험을 피할 수 없었다.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들을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이유다. 지난 3월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공인중개사법은 중개사에게 중개 대상물(부동산)의 소유권·저당권 등 권리관계에 관한 사항을 세입자에게 설명하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설명 의무’다. 하지만 집주인이 세금을 미납했는지, 주변 부동산 시세는 어떠한지 등은 설명 의무 대상에서 빠져 있다. 세금납부 내역의 경우 중개사가 집주인의 세금 미납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사건 중 상당수는 부동산의 적정 시세나 임대인의 세금체납 사실 등을 임차인이 알지 못한 채 계약하면서 발생한다.
중개인에게 정보 열람 권한이 없다 보니 설명 의무를 부과할 수 없고, 의무가 없으니 책임도 없는 구조가 완성된다. ‘공인중개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손해를 발생하게 할 때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법 규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다. 국회는 지난 3월 중개사 책임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법도 중개인이 임차인에게 ‘집주인의 세금 미납 여부를 당신이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할 의무를 부과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올해 6월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발의해 중개사가 신용정보 시스템 등을 통해 임대인의 세금체납 정보나 주택의 선순위 권리관계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권한을 부여해야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은 “중개사는 국민 재산권을 중개하도록 위임받은 사람인데, 이들의 사회적 책임은 상당히 적은 구조”라며 “권한을 부여해 책임소재가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처벌 규정도 ‘솜방망이’에 그친다. 중개사가 거래상 주요 사실을 거짓으로 얘기하거나 임차인에게 부당한 영향을 주는 등의 행위를 했다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하지만 사망자도 발생하는 등 수많은 피해자가 속출한 전세사기 사태에서 여기에 가담한 중개사에 대한 처벌치고는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영우 변호사는 “처벌은 중개사법에 정해진 부분만 적용할 수 있는데 그 처벌 자체도 크지 않은 편이다”며 “사기죄를 적용하려고 해도 중개사는 대리인이라 쉽지 않다. 사기방조죄 정도가 현실적인 혐의”라고 말했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는 “중개사는 전문인이고 국가 공인한 자격자인데 신뢰를 훼손한 이들에게 엄격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서원석 중앙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는 “정부 대책 외에도 문제를 유발한 중개사에게 가중처벌 규정을 만들거나 자격을 취소할 수 있는 규정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강화해도 문제는 남는다. 중개사가 손해배상을 해야 할 때 기대게 될 보험의 보장액이 적기 때문이다. 공인중개사는 대부분 일종의 보험인 공제상품(협회가 먼저 갚아준 뒤 중개사 개인에게 구상권 청구하는 방식)에 가입하는데, 공제금액 한도가 개인공인중개사의 경우 1억원에 불과하다. 최근 법 개정으로 2억원으로 상향됐지만, 계약 1건당 보증하는 금액이 아니다 보니 여전히 피해액 대비 부족하다. 공제금액 한도(1억→2억 상향)는 중개업소가 1년 동안 보상해줄 수 있는 손해배상금의 총액이다. 중개 사고를 겪은 계약자가 많으면 1인당 보상금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도를 초과했다면 돌려받는 보상금이 없을 수도 있다.
지난해 1월 오피스텔을 1년 계약한 뒤 전세금 1억3천만원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유아무개(31)씨는 “사회초년생이라 잘 모르기도 하고 공인중개사가 임대인이 돈 많고 융자 없고 깔끔하다고 소개하니 믿고 했다”며 “나중에서야 계약 당시 부동산 영업정지 기간이었다는 걸 알게 돼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세보증금이 1억7300만원에 달하는 ㄱ(31)씨도 “지금 세입자들이 50대 부부 임대인과 30대 여성 임대인으로 갈리는데 모두 같은 공인중개사가 계약을 도맡았다”며 “계약 이후 폐업해버리다 보니 책임을 묻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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