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 남동부 교외 크레테유에 있는 사회보장연금 콜센터를 방문해 직원과 얘기하고 있다. 연금 재정을 늘리기 위해 많은 임금을 받는 사람의 연금보험료 감면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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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률과 사회보장세 올리기, 기업 혜택 줄이기 등 연금기금 적자를 메우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더 일해야 한다’는 집착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사람들이 어떻게든 일터에서 늙을 때까지 일하려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돈 때문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정부는 언론을 통해 그렇게 믿게 하려 하지만. 그렇다. 돈 때문이 아니다. 프랑스 연금제도는 ‘구조할’ 필요가 없다.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전문가들은 연금기금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적자로 돌아서리라 예측한다. 하지만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금기금 지출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연금자문위원회(COR)는 가장 최근의 보고서에서 연금기금 지출이 지금 수준을 유지하거나 소폭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통제하지 못하는 지출 변수가 없다”고도 했다. 문제는 기금 수입 감소다. 정부가 국가행정기관과 공공의료기관에 재정긴축을 하라고 압박한 탓이 크다. 공공기관의 긴축재정으로 연금기금 수입 기여분도 쪼그라들었다.
적자라고 돈줄을 좨야 하는 건 아니다. 수입을 늘려 메우면 된다. 수입을 늘려 더 대담하고 정의로운 연금개혁을 할 수 있다. 많은 경제학자가 그 방안을 고민했다. 기금의 여러 재원을 하나씩 살펴보니 개선해야 할 점이 보였다.
이 분야 최고 전문가로 알려진 경제학자 미카엘 제무르는 350억유로(약 49조원)의 추가 재정을 만들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소개했다. 먼저 불필요한 공제제도, 특히 최저임금의 2.5배가 넘는 임금에 대해서는 연금보험료 감면제도를 폐지하자고 제안한다. 이 경우 기금 수입이 20억유로 늘어난다. 프랑스 경제분석위원회는 2019년 보고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최저임금의 1.6배부터 공제 혜택을 없앨 것을 제안한다. “공제제도의 효용이 증명되지 않았다. 경쟁력 향상이 제도의 주요 목적이었다. 그러나 공제 혜택이 수출에 긍정적 효과를 냈는지 알 수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경제학자 막심 콩브와 신문기자 올리비에 프티장은 최근 몇 년간 기업에 주는 혜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문제라고 비판한다. 기업 지원책을 2018년 수준으로 줄이면 600억유로의 추가 수입이 생길 것으로 추산한다. 두 사람은 2023년 1월31일 <르몽드>에 실린 기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정부가 심각한 사회갈등을 일으키기보다 기업에 주는 혜택부터 없앨 수 있다. 기업 지원책이 별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여러 번 나왔다. 그에 할당된 예산을 5~6% 줄이면 정부가 연금개혁으로 아끼려는 금액인 120억유로를 추가 수입으로 얻을 수 있다.”
기업 지원책의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갑자기 너무 많이 끊어내면 몇몇 기업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일자리까지 위험해진다. 기업에 환급해주는 세금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먼저 생산세 감면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기업부가가치분담금(CVAE·매출액이 일정 수준을 넘은 기업이 지자체에 납부하는 생산세)이 2024년 사라지면 연간 세수가 80억유로 줄어든다.
제무르는 ‘노동자 저축’(기업이 성과에 따라 노동자 몫으로 하는 저축)을 연금보험료에 포함하는 방안도 제안한다. 그렇게 하면 연금기금 재정수입을 1년에 35억유로 늘릴 수 있다. 다만 이는 단기 재정 확보에 그친다. 노동자 저축으로 늘린 재정의 수입과 지출이 나중에 비슷해진다. 연금을 추가로 적립한 노동자가 퇴직하면 연금을 타 쓰기 때문이다.
연금기금 재원을 늘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입자를 늘리는 것이다. 경제학자 질 라보는 “해법은 일자리”라며 “연금기금 수입은 가입자 임금에서 걷는 보험료이므로 일하는 사람과 임금이 증가하면 연금재정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영유아 정책을 만들어 여성고용률을 끌어올리는 것도 방법이다. 일종의 사회적 투자다. 당장은 비용이 들지만 멀리 보면 이익이다. 또 다른 해법은 외국인에게 막아놓은 일자리를 푸는 것이다. 불평등연구소에 따르면 유럽연합 비가입국 출신의 외국인에게 금지된 일자리가 500만 개나 된다.
2023년 3월15일 프랑스 서부 앙세니-셍-줴레옹Ancenis-Saint-Gereon에서 건물 신축 공사를 하고 있다. 연금기금 재원을 늘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입자를 늘리는 것이다. REUTERS
가장 확실한 해법은 장년층 고용을 늘리는 것이다. 프랑스는 55~64살 고용률이 2021년 기준 56%로, 유럽연합 평균(60.5%)보다 낮다. 정부가 국민에게 퇴직 연장을 강제하기 전에 할 일이 있다. 50대가 지나서도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게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 회사는 나이 든 직원을 문밖으로 쫓아내기 바쁘다. 장에르베 로랑지와 알랭 빌뫼르 두 경제학자의 계산에 따르면, 2032년까지 장년층 고용률을 10%포인트 올리면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이 2%포인트 늘어난다. 그때까지 연금기금은 500억유로를 추가할 수 있다.
공공일자리와 공무원 급여를 조정해 추가 세수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시민단체 ‘우리공공서비스’는 “공무원 급여를 꾸준히 올리고 인구변화에 따라 공무원 수를 늘리면 2030년까지 연금기금 적자를 3분의 1만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게 했을 때 2030년 국가행정기관과 공공의료기관의 공무원 몫으로 들어오는(사용자와 노동자가 내는) 연금기금 세수가 물가상승률을 반영해도 33억유로나 된다.
일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건 실업자가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금재정 수입은 늘리고 실업보험 지출은 줄이는 일석이조 효과를 낼 수 있다. 정부는 2027년까지 실업률을 4.5%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을 바탕으로 연금자문위원회가 연금재정 흐름을 예측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연금자문위원회 계산에서 실업기금공단(Unedic)이 절약할 200억유로(GDP의 0.8%)가 빠졌다고 경제학자 앙리 스테르뒤니아크는 지적했다. 아낀 실업재정을 연금재정으로 통합하면 위원회가 예측한 2030년 연금재정 적자율 0.6%를 충분히 메울 수 있다. 그렇게 해도 문제없다. 어차피 둘 다 사회보험제도다.
연금보험료를 조금 올리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나? 연금자문위원회에 따르면 지금부터 2027년까지 0.8%포인트 올리면 재정균형을 맞출 수 있다. 미카엘 제무르는 평균세후소득(전일제, 2574유로)만큼 버는 사람을 기준으로 월 28유로(약 3만4천원)를 더 내면 될 것으로 추산했다. 오른 보험료는 임금에 전부 포함된다고 가정했다. 보험료를 더 낸다고 구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구매력 사승폭이 조금 줄어드는 것뿐이다.
2027년 평균세후소득은 지금보다 128유로 오를 것으로 연금자문위원회는 전망한다. 보험료 인상률 0.8%를 고려해 계산하면 이 금액은 약간 줄어든다. 다만 저소득층이 보험료 인상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 사회보험제도에서 규정하는 기준소득보다 많이 버는 사람으로 보험료 인상 대상을 한정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월 세전소득이 3666유로(약 510만원)를 넘는 사람만 보험료가 오른다.
미카엘 제무르는 말했다. “연금은 공짜가 아니다. 사회적 임금이다. 요술을 부려 돈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보험료율은 허수아비가 됐다. 이를 조정할 생각을 먼저 하지 않았다. 보험료율 조정은 모든 경제활동인구가 재정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년연장보다 훨씬 덜 과격하다. 정년연장은 2027년 정년을 앞둔 사람에게 경제 전반의 무게를 짊어지운다.”
더 과감한 변화도 가능하다. 지금까지 숱하게 추진된 연금개혁으로 퇴직자는 앞으로 몇 년간 다른 사람들보다 생활수준이 많이 떨어질 것이다. 또 그런 까닭에 연금기금 적자폭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인구 고령화가 진행된다고 해도 말이다. 경제학자 크리스토프 라모 역시 적자 상태가 심각하지 않으리라고 전망한다. “노령연금의 상대가치를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노령연금 지출 규모를 2050년 기준 GDP의 16.5%로 조정하면 된다.”
GDP 대비 연금지출의 비중은 1970년 7%에서 2021년 13.8%로 올랐다. 그 때문에 프랑스 경제가 침체한 것도 아니다. 크리스토프 라모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기업 이윤율을 건드리지 않고 보험료율을 서서히 5%포인트까지 끌어올리면 된다(25년간 매년 0.25%포인트 인상). 그렇게 하면 경제활동인구의 생활수준이 예상보다 더디게 좋아질 것이다. 대신 모두에게 존엄한 은퇴생활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년연장의 대안은 얼마든지 나와 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3년 3월호(제432호)
Comment assurer l’équilibre financier du régime sans travailler plus
로랑 자노 Laurent Jeanneau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번역 최혜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