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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부모 몰라보는 2살 희귀병…베풂 좋은 건 어떻게 아니, 천사야

등록 2023-05-08 06:00수정 2023-05-09 20:15

[나눔꽃]
세계 몇명뿐 극희귀질환 포토키 룹스키 증후군
태어나 첫 한걸음 걷는 데 두달 치료비 2천만원
위험은 모르지만 타인에게 나눠주는 것 좋아해
지율(가명·2)이는 21개월이지만 몸을 잘 가누지 못한다. 집에선 안전울타리 안에서만 머문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율(가명·2)이는 21개월이지만 몸을 잘 가누지 못한다. 집에선 안전울타리 안에서만 머문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1개월 지율(가명·2)이는 태어난 뒤 반년 넘게 누워만 있었다. 빠르면 3개월에도 한다는 ‘뒤집기’도 하지 못했다. 먹을 때마다 자주 토했다. 갓 태어난 신생아 때도 긴 잠을 자지 못하고 내내 울었다. 모든 게 느린 아이였다.

초보 엄마(42)는 “아이는 다 그런 줄” 알았다. 태어날 때 2.7㎏이던 지율이의 몸무게는 7개월간 0.2㎏밖에 늘지 않았다. 엄마는 7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서 영유아 검사를 받고나서야 지율이가 다른 아이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의사는 정밀진단을 권했다.

엄마의 생일이기도 했던 지난해 5월7일 지율이는 ‘포토키 룹스키’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17번 염색체 중 일부분이 중복해 하나 더 생기는 극희귀질환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환자가 몇 명 없는 유전자 이상 뇌병변이다. 근육·지능 발달이 느리고 심장·신장 기능이 약하다는데, 사례가 얼마 없다 보니 어떤 증상이 주로 나타나는지 예측이 힘들다. 완치는 불가능하고, 평생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 엄마는 그저 ‘성장이 느린 아이’라고밖에 지율이를 설명할 수 없다.

지율이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지만, 엄마의 시간은 촉박하다. 2021년생인 지율이는 결혼한 지 9년 만에, 엄마가 마흔살이 되어서야 겨우 얻은 귀한 아이였다. “제가 나이가 많아서, 지율이가 스무살이 되면 벌써 예순이에요.” 엄마는 ‘지율이가 언젠가 세상에 혼자 남겨질까 봐’라는 말만 하면 눈물부터 터진다. “늦게 낳은 것도, 이렇게 낳은 것도 미안한데 제가 없는 세상에서도 잘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만 두 번이나 멈춘 작은 심장

지난달 26일 만난 지율이는 낯선 기자를 보고서도 다가와 손을 잡고 까르르 웃었다. “사람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에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이 역시 지율이의 병 영향이었다.

아이들은 통상 생후 6~8개월 사이에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뚜렷해지는 ‘낯가림’이 생기지만, 지율이에겐 ‘낯설다’는 인지가 없다. 포토키 룹스키 증후군은 지능장애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반한다.

지율이는 “엄마, 아빠”를 감탄사처럼 말한다. “엄마,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자주 듣는 단어니까 아무 데나 보고 저렇게 말해요.” 엄마의 목표는 지율이가 “엄마, 아빠”를 제대로 알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인지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포토키 룹스키’ 증후군을 진단받은 지율(가명·2)이가 자신의 진료 기록지를 보며 누워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달 26일 ‘포토키 룹스키’ 증후군을 진단받은 지율(가명·2)이가 자신의 진료 기록지를 보며 누워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엄마를 가장 두렵게 하는 건 지율이의 ‘무호흡’이다. 지율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호흡 경련을 일으킨다. 한창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녔던 지난해 10월, 지율이가 갑자기 기절하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엄마는 지율이가 죽는 줄만 알았다. 119구급차에서 엄마는 지율이를 살려달라고 빌었다.

지율이는 그 뒤로도 자신이 하기 싫거나 힘든 상황에 부닥치면 ‘무호흡’ 경련을 일으켰다. 심할 땐 하루에 서너차례 경련을 일으켰다. 지율이가 쓰러질 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함께 심폐소생술을 하고 인공호흡을 한다. 지율이의 심장은 올해 두 번이나 멈췄다가 뛰었다.

알고 보니 ‘무호흡’ 경련도 지율이의 낮은 인지 능력 탓이었다. 재활치료를 시작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가 몰려오자 숨을 멈추는데, 이런 행동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뜻이다. 일단 병원에서는 지율이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가 있을 거라며 철분제를 처방했다. 지율이는 쓰디쓴 철분제를 1g씩 하루에 한 번 먹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알 때까지.

지율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신체적 성장도 느리다. ‘꿀꺽’ 하고 음식을 삼키는 행동이 힘들어 아직 이유식을 먹는다. 체중이 덜 나가고, 키도 덜 크는 이유다. 증후군의 특성인 근골격계 기형으로 인해 지율이의 발목은 “무너져” 있다. 키가 자라면서 척추도 틀어질 수 있다. 같은 증후군을 앓은 다른 아이들 사례를 보니, 성인이 될 때까지도 재활치료를 해야 퇴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는 지율이의 부모님이자, 간병인이죠.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 매달 치료비 최소 200만원

엄마는 지율이가 처음 몸을 세웠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입원치료 2개월 만이었다. 18개월까지 앉는 것도, 걷는 것도 스스로 하지 못했던 지율이가 재활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한 발짝 내디딜 때 ‘희망’을 봤다. “정말 너무 좋았죠. 혼자 처음으로 서서 다들 박수 치고 난리가 났으니까.” 그 순간을 떠올리면 엄마는 아직도 눈물이 고인다. 입원치료의 효과가 눈에 보이니 더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경제적 장벽에 부딪혔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두달가량 입원치료를 하고 받아든 진료비 계산서에는 2000여만원이 찍혀 있었다. 진찰료, 입원료, 재활 및 물리치료비 등이 합쳐진 금액이다. 다행히 희귀난치성 질환 산정특례와 희귀질환자 의료비지원사업으로 이번에는 진료비를 탕감받았지만, 앞으로 지율이가 받아야 할 감각통합치료, 언어치료 등은 대부분 건강보험에 포함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다.

재활 및 물리치료도 국가 지원이 없으면 이 정도 비용이 들어가는데 벌써 앞날이 깜깜하다. “비급여 치료가 시작되면 달마다 최소 200만원은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의사가 지율이에게 맞는 치료를 처방해줘도 돈이 없으면 못 받을 수도 있잖아요. 치료하다 빚만 쌓이면 결국 중단해야 할 수도 있겠죠.”

지율(가명·2)이가 인터뷰 도중 낯선 사람에게 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율(가명·2)이가 인터뷰 도중 낯선 사람에게 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하필 집안 사정도 어려워졌다. 사업 실패로 남편 앞에 수억원대 빚이 생겼다. 현재 일용직으로 일하는 남편은 월 250만원, 주말까지 일하면 월 300만원을 겨우 번다. 월급으로는 빚을 감당하기 힘들어 개인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전세자금을 마련하느라 엄마 이름으로 1억원대 빚을 져 매달 나가는 이자도 70만원이다. 엄마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데, 한창 재활치료가 필요한 지율이를 어딘가 맡기고 일을 하러 나갈 순 없었다. 전세자금 대출에 개인회생 비용까지. 생활비마저 빠듯한 상황이라 지율이의 치료에 오롯이 전념할 수가 없다. “지율이가 크면 옷 한 벌이라도 사야 하는데 최저가 6000원짜리 옷을 사요. 그렇다 보니 치료비는 정말 엄두가 안 나요.”

엄마 혼자 지율이를 치료해볼까도 생각했다. 주변에서는 극구 말렸다. 자칫하다간 아이를 더욱 망가뜨릴 수 있다고 해서다. 전문가의 재활치료가 있어야 뒤틀린 발목을 바로 하고 걷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병원에는 지율이가 몸을 세울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기구도 있다. 매번 병원에서 뇌파 검사를 통해 ‘경기파’가 나타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아이가 갑자기 경기를 일으킬 수 있는 뇌전증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누워서 산소호흡기만 껴야 할 수도 있다고 해요.” 수백만원의 비용에도, 엄마가 ‘큰맘’ 먹고 병원으로 향하는 이유다.

모든 게 예쁜 아이

지율의 병명을 처음 들었던 엄마의 생일날, 엄마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펑펑 울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착한 집 앞에는 남편이 얻은 빚 때문에 압류를 집행하러 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악의 날이었죠.” 엄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더는 희망이 없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엄마는 지율의 ‘예쁜 점’을 수도 없이 꼽으며 웃을 수 있다. “제가 얼마나 힘들게 낳은 아이인데요. 다 예쁘죠. 웃는 것도 예쁘고요. 먹는 것도 예쁘고요. 자는 게 특히 제일 예쁘고요.”

감각에 예민한 지율이는 부드러운 천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게 뭘 건네주는 것도 좋아한다. “지율이가 물건을 주면 엄청 칭찬을 해줬더니, 그 반응이 좋은지 사람들한테 계속 뭘 주려고 해요.” 엄마는 다정한 마음을 가진 지율이가, 커서 누군가에게 이용당하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누구를 닮아 이렇게 예뻐요.” “당연히 저죠.” 거실에 웃음소리가 퍼지자 지율이도 허공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는 그런 지율이가 엄마, 아빠를 향해 오래도록 웃어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지율이네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IBK기업은행 148-013356-01-136, 예금주 : 대한적십자사)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대한적십자사(1577-8179)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대한적십자사로 연락하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20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지율이의 의료비와 생계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2000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지율이처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위기가정에 지원될 예정입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지율이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밀알복지재단이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청각·지적·자폐성 중복 장애가 있는 태일·태용이(가명)네 가족의 사연(<한겨레> 2023년 4월6일치 14면)이 소개된 뒤 255분께서 “어머니 힘내세요”, “태일·태용이네 가족을 응원합니다”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1314만5135원(5월1일 기준)의 정성을 모아주셨습니다. 밀알복지재단은 “태일·태용이네 가족을 위해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후원자님들께 감사드린다"고 전했습니다. 후원금은 태일·태용이의 의료비, 생계비로 전달됩니다. 태일·태용이네 가정을 위해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신 후원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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