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방과 후 운동부 코치가 돈을 받는 조건으로 자리를 물려주고 4천여만원을 받은 사건에서 돈은 추징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코치가 공직자 신분일 때는 서로 약속한 액수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씨와 ㄴ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다만 ㄱ씨로부터 4680만원 추징을 명령한 원심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이 부분만 파기했다.
공립 고등학교 태권도부의 방과 후 수업 코치인 ㄱ씨는 같은 학교 방과 후 코치인 ㄴ씨의 수업이 폐지되자 ㄴ씨에게 ‘매월 400만원씩 주면 자리를 내주겠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ㄱ씨는 2017년 12월 일을 그만뒀고 한 달 뒤 ㄴ씨가 후임자로 임용됐다. ㄴ씨는 1년간 매달 300만∼400만원의 돈을 계좌로 송금했다.ㄱ씨는 ㄴ씨로부터 총 4680만원을 받았고, 검찰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2심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ㄱ씨로부터 4680만원을 추징했다. 대법원도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4680만원을 추징한 것은 위법하다고 봤다.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공직자 등이 재직 중 돈을 받기로 약속하고, 퇴직 뒤 돈을 받은 경우 청탁금지법은 재직 중의 ‘약속’만 처벌하기 때문이다. 공직자 신분이 아닌 퇴직 후 수수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형법은 ‘사후수뢰’를 처벌하면서 ‘공무원이었던 자가 재직 중에 청탁을 받고 직무상 부정한 행위를 한 후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를 처벌하지만 청탁금지법에는 이런 조항이 없다. 둘째, 청탁금지법으로도 ‘약속’이라는 범죄 행위로 얻은 금액은 몰수할 수 있다. 그러나 약속 당시 금액이 특정되지 않아 몰수대상인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겼거나 취득한 물건’을 특정할 수 없고, 따라서 몰수가 불가능할 때 몰수가액을 가져가는 ‘추징’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대법원 판단이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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