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당시 '통일혁명당 재건' 사건에 연루돼 징역 17년 간 옥살이를 한 고 박기래씨의 아내 서순자 씨와 장남 박창선 씨가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박 씨의 재심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만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은 고 박기래씨가 48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8일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 군기누설 등의 혐의로 기소돼 사형이 확정됐던 박씨의 재심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박씨는 박정희 유신 독재가 본격화된 1974년 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보안사령부에 불법 체포된 상태로 수사를 받다 이듬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7년 동안 수감됐다가 감형돼 1991년 출소해 2012년 사망했다. 통혁당 사건은 대표적인 간첩단 조작사건 중 하나다.
박씨의 유족은 2018년 12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민간인을 수사할 권한이 없는 보안사령부(현 국군안보지원사령부)가 영장 없이 체포·감금해 수사했고, 구타와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 자백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고법은 2020년 5월 재심을 결정했다.
검찰은 재심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무죄가 선고되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박씨가 보안사 진술과 같은 취지로 법정에서도 진술했는데, 법정 진술의 증거능력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 역시 박씨의 법정 진술과 수사기관 수집 압수물에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법정에서 공소사실 중 상당수를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했으나, 불법 구금, 고문 등 가혹행위로 보안사에서 임의성(자의성) 없는 진술을 한 후 그 심리상태가 법정에서도 계속된 상태에서 이뤄져 ‘임의성(자의성) 없는 자백’에 해당해 증거능력이 없다”라고 밝혔다. 또 “경찰 작성 압수조서 및 압수물은 영장없이 압수가 이뤄졌으므로 증거능력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박씨의 장남 박창선씨는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검찰은 반성은커녕 17년을 옥고를 치르고 고문당한 분에게 다시 무기징역을 구형했는데, 너무나 이례적이고 부적절하다”면서 “처음으로 무죄가 확정됐기에 공동 피고인들도 재심 청구를 해 (명예) 회복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박씨의 아내 서순자씨는 “오늘 재판이 그간의 한을 다 풀어줘서, 만세를 부르고 싶다”라고 말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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