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어 메뉴판. 커뮤니티 갈무리
한글 표기가 없이 영어로만 적힌 메뉴판이 많아 불편하다는 호소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자 “메뉴판에 한글 표기가 없으면 불법이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주장과 보도가 22일 나왔다. 카페나 음식점에서 한글이 없는 메뉴판을 제공하면 처벌받을까?
왜 논란이 됐나 : “1인1음료만 한글로 적는다”
지난 2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카페와 식당 등에서 제공하는 메뉴판에서 한글 설명 없이 영어로 작성된 메뉴판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커뮤니티를 사용하는 한 누리꾼은 ‘메뉴판 한국어로 쓰는 법 좀 만들었음 좋겠어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메뉴판에) 무슨 음식에 뭐가 들어갔는지는 정도는 한글로 써야 하지 않냐”며 “영어로 써놓고 진짜 외국인이 와서 영어로 주문하면 못 알아듣는다. ‘1인 1음료’ ‘이용시간’은 기가 막히게 한글로 써놓던데 웃기지도 않는다”고 적었다. 그가 글과 함께 첨부한 카페와 식당 등 메뉴판 사진은 모두 영어로 작성돼 있다. 게시물에는 ‘허세만 가득하다’ ‘영어로 쓰면 있어 보이냐’ 등의 댓글이 달렸다. 지난해 한 카페에서 미숫가루를 ‘M.S.G.R’로 표시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질타를 받았던 일까지 다시 소환됐다.
해당 글이 화제가 되자 “옥외광고물법상 메뉴판에 한글 표기가 없으면 불법”이라며 “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보도나 주장이 나왔다. 그 근거로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 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추어 한글로 표시해야 하며, 외국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는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을 제시했다. 또 “지자체에 신고하지 않은 옥외광고물을 설치하는 경우 등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옥외광고물법 벌칙 조항도 근거로 들었다.
지난해 한 카페에서 미숫가루를 메뉴판에 ‘M.S.G.R’로 표시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됐다. 온라인커뮤니티 갈무리
팩트체크 ① 메뉴판은 옥외광고물 제재 대상 아님
하지만 식당 등에서 제공하는 메뉴판은 옥외광고물법에서 규정하는 ‘옥외광고물’이 아니다. 이 법에서 규정하는 옥외광고물은 “공중에게 항상 또는 일정 기간 계속 노출돼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하는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간판·디지털 광고물·입간판·현수막·벽보·전단과 이와 유사한 것”이다. 길거리 등 불특정 대중에게 공개되는 곳이 아닌 식당 등 내부에서 손님에게만 제공하는 메뉴판은 옥외 광고물 자체에 해당하지 않는 셈이다. 따라서 애초 메뉴판은 옥외광고물법에서 제재하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서울 서대문구 거리에 영어로 표기된 간판. 연합뉴스
팩트체크 ② 외국어 간판도 벌칙 조항은 없음
그렇다면 이 법상 옥외광고물에 해당하는 외부 간판을 외국어로만 표기하면 처벌받을까? 결론적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 광고물을 원칙적으로 한글로 표기해야 한다’는
시행령 위반에 대한 벌칙 조항은 없다. 다만, 옥외광고물 신고대상인 △면적 5㎡ 이상이거나 △건물 4층 이상에 표시된 간판을 별다른 이유 없이 외국어로만 표기할 경우 지자체 등으로부터 시정요구를 받을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2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광고물을 한글로 표시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겼다고 처벌하는 벌칙 조항은 없다. 벌금을 부과받는 사유는 신고 대상인 간판을 신고하지 않은 경우 등에만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신고 대상) 광고물을 한글표기 하지 않은 경우 (지자체 등으로부터) 시정요구를 받을 수 있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며 “다만, 외국어로 상표가 등록돼있거나 한글로만 표기하면 알기 어려운 경우 등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는 외국어로 표기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