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들이 전세 보증금 일부 또는 전액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대전의 ㄱ 빌라
지난 24일 인천 전세사기 피해자가 또다시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사건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대전에서도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자본금 삼아 법인을 세운 뒤,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사업을 벌인 임대인이 수개월째 수억원 상당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피해자들은 “보증금은 못 준다면서 법인 이사들은 수억원짜리 벤츠를 리스로 타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2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대전 중구의 ㄱ빌라 세입자들은 올해 초 계약이 만료됐음에도 전세 보증금 전액 또는 일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세입자들에 반환되지 않은 보증금은 총 6억여원 수준이다. 이 빌라를 지어 세를 놓은 ㅎ법인은 앞서 지난 1월 말 일부 세입자들에게 “2월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보증금을 반환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지만, 현재까지도 보증금 반환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입자들은 ①법인 관계자가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와 공모해 임대차 현황 등을 속이는 등 거짓 정보를 제공했고 ②해당 법인이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연달아 대규모 부동산 사업을 벌였다는 점에 비춰 ‘전세사기’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 법인과 직간접적으로 엮인 다른 빌라 세입자들도 보증금을 못 돌려받고 있어 피해 규모가 수십억원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세입자들은 ㅎ법인이 애당초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가로챌 목적으로 전세계약을 진행했다고 의심한다. 세입자 다수가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ㅎ법인 이사인 하아무개(35)씨와 공인중개사로부터 ‘월세 세대 위주 빌라’라는 사실을 고지받았는데, 알고 보니 빌라 전체가 전세 세대로만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계약과정에서 세입자들에 제공된 ‘임대차현황표’를 보면, 이 빌라 11세대 중 7세대가 월세라고 돼 있어 사실과 달랐다. 이른바 ‘올전세’ 건물의 경우 상대적으로 ‘깡통전세’가 될 위험성이 커 세입자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로 거짓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 빌라 세입자 ㄱ씨는 “전형적인 기획부동산 사기처럼 보인다”며 “이렇게 위험한 빌라였으면 입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법인 이사들은 수억원짜리 벤츠를 리스로 타고 있는데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이 빌라는 현재 주택가격보다 전세 보증금과 대출금액이 더 큰 ‘깡통전세’ 상태다.
자본력이 없는 ㅎ법인이 설립 7개월 만에 대전 중·서구 일대에 빌라 3채를 연달아 짓고 200억원대 상가사업까지 벌였다는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무자본 상태에서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종잣돈 삼아 주택 수를 늘려가는 전세사기 수법과 닮았기 때문이다. ㅎ법인 이사를 지낸 ㄴ씨는 “애초 이 법인 자체가 다른 빌라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자본금(3억5천만원)으로 해서 세워진 회사”라며 “별도의 수익사업을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부동산 사업을 연달아 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ㅎ법인은 2020년 2월에 만들어진 신생 법인이다.
ㄱ빌라 일부 세입자들은 하씨와 공인중개사를 사기 혐의로 대전 중부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은 조만간 하씨를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하씨는 <한겨레>에 “피해자들에게 일부 보증금을 상환했고 전세사기도 아니다”라며 “경찰 조사에서 해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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