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택시 승강장에서 손님들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택시 회사가 기사들에게 기름 값(유류비)을 부담시키는 것은 합의 하에 별도 약정을 맺었더라도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6일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택시기사 ㄱ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27일 확정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택시운송사업자의 운송비용 전가를 금지하는 ‘택시 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 12조1항은 강행(강제로 적용되는)규정”이라며 “사업자와 근로자 사이의 합의로 유류비를 근로자들이 부담하게 약정하는 것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ㄱ씨가 다니던 회사의 택시 기사들은 수입의 일정액을 회사에 내고, 나머지(초과운송수입금)를 가져가는 사납금제 방식으로 일해왔다. 택시기사들은 회사와 맺은 임금 협정 등에 따라 초과운송수입금에서 유류비를 각자 부담했다.
그러던 중 2014년 1월께 택시회사가 차량 구입·운행에 드는 제반 경비를 기사에게 부담시키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택시발전법’이 제정됐다. ㄱ씨 회사도 2017년 10월부터 법 적용을 받게 됐지만 기사가 초과운송수입금에서 유류비를 부담하기로 한 약정은 계속됐다.
회사의 방침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ㄱ씨는 회사를 상대로 자신이 부담한 유류비 상당의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2019년 10월에 냈다. 1·2심은 2017년 10월부터 2019년 6월까지 ㄱ씨가 부담한 유류비 약 1천만원을 회사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노사 약정보다 강행규정이 우선한다고 판결하며 “노사합의를 통한 약정이 유효하다고 하면 택시기사의 실질적인 근로조건 개선을 통해 국민 교통편의를 제고하고자 하는 택시발전법 입법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결이 맞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택시발전법의 제정 목적과 도입 취지, 규정을 위반한 행위가 각종 행정제재 및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는 점, 택시운송사업의 공공성 등을 고려하면 택시회사의 운송비용 전가를 금지하는 규정은 강행규정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대법원은 “사업자가 유류비를 부담하는 것을 회피할 의도로 노동조합과 사이에 외형상 유류비를 사업자가 부담하기로 정하되 실질적으로는 근로자에게 부담시키기 위해 사납금을 인상하는 합의를 하는 행위 역시 무효”라고 강조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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