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이후 달라진 건 하나였어요. 원양어선사로부터 6시간 휴식을 취한 것처럼 서명을 강요당했습니다. 2시간 쉬고 22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어요.” “옆에 앉게 될 때마다 한국 선임 선원이 제 성기를 잡고 주무르며 이건 한국 문화라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이주어선원들의 노동권 및 인권 침해 실태에 대해 사과하고 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이주어선원들은 노동착취와 학대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인 소유 및 한국 국적 선박에서 일하는 이주어선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일 국제환경운동단체 환경정의재단(EJF)과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주어선원에 대한 인권 침해 대응 실패 2023년 브리핑’ 자료를 보면, 정부의 ‘원양 외국인 어선원 근로조건 개선 이행방안’(이행방안)이 시행된 이후에도 한국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이주어선원들의 강제 노동과 인신매매 등 인권침해가 여전히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어선원에 대한 인권 침해 대응 실패 2023년 브리핑’ 자료. 환경정의재단·공익법센터 어필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21년 1월 해양수산부(해수부)는 한국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이주 어선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하루 최소 10시간의 휴식 보장, 국제운수노동조합(ITF) 기준에 근거한 최저임금 적용, 송출과정 관리 강화, 식수 개선 등을 포함한 ‘원양 외국인 어선원 근로조건 이행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환경정의재단과 어필은 해수부가 내놓은 이행방안의 실효성과 이행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2021년 9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한국 국적 원양어선에서 일했던 74명의 인도네시아·필리핀 어선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인터뷰에 응한 절반 이상의 이주어선원들은 하루 14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하고(44명), 국제기준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것(43명)으로 드러났다. 또한 인터뷰에 참여한 전체 이주어선원들은 정부가 금지한 여권 압수도 불법적으로 당했다고 응답했다.
이주어선원에 대한 학대도 그치지 않았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주어선원 58명은 성적·신체적·언어적 학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3명의 이주어선원은 한국인 선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답했다. 학대를 경험한 이들은 해당 인터뷰에서 지난 2021년까지 가해자가 처벌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정부의 이행방안은 학대에 책임 있는 한국인 어선원에 대한 계약 해지·재고용 불가 등을 명시하고 있다.
환경정의재단과 공익법센터 어필은 “이행방안 시행 이후에도 이주 어선원들의 노동 조건은 개선되지 않았으며, 강제 노동과 인신매매에 해당하는 관행이 여전히 만연하다”며 “정부는 효과적인 실태 조사를 위해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할당해야 하며, 피해자 중심 접근 방식을 통해 이주 어선원에 대한 인권 침해와 불법 어업 활동을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단체들은 △국제 어선원 노동 협약 비준 △선원법 개정 통한 이주어선원·한국인 어선원 동등한 보호 대우 보장 등을 촉구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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