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부주의한 사건 처리로 범죄 혐의를 받던 경찰관이 증거를 인멸하는 일이 발생했다. 검찰은 관련 규정에 따랐다고 하지만, 수사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인 규정 해석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원지검은 1일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ㄱ경장을 불법 촬영(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ㄱ경장은 몇해 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소개팅 앱에서 알게 된 20~30대 여성 26명을 만나면서 캠코더 등으로 동의 없이 성관계 영상을 촬영한 뒤 이를 소지한 혐의 등을 받는다.
하지만 이 사건 수사는 검찰의 ‘실수’로 한때 난관에 봉착했다. <한겨레> 취재 결과, 수원지검은 피해 여성의 고소장을 접수한 뒤 경찰로 사건을 넘겼다. 개정 검찰청법은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제한하면서도
‘경찰공무원이 저지른 범죄는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관 범죄를 경찰이 수사할 때 생기는 여러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조항이다. 검찰은 ‘직무상 비위’가 아닌 ‘개인 비위’라고 판단해 직접 수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사건이 경찰로 넘어가면서 수사 대상자인 ㄱ경장에게 ‘당신이 수사 대상’이라는 점이 고지됐다는 점이다. 검경 간 수사 협력 관계를 규정한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을 보면,
검사가 직접 접수한 고소 사건을 경찰에 이송하면 ‘종결’로 간주된다. 사건이 종결됐기 때문에 고소인은 물론 피고소인에게도 ‘알림’이 간다.
본격 수사를 받지 않은 피고소인에게 수사기관이 피소 사실을 안내하는 건 상식에 맞지 않다. 실제 대검찰청 예규에도 ‘고소장 접수 사실을 피고소인에게 알리기 전에 고소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고소인이 동의를 해도 증거인멸 등이 우려되면 고소장 접수 사실 통지를 제한한다’ 등의 규정이 있다.
자신의 피소 사실을 알게 된 ㄱ경장은 증거인멸에 나섰다. 수원남부경찰서가 ㄱ경장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고 인근 시시티브이(CCTV)를 분석한 결과, 검찰로부터 피소 사실을 통지받은 이틀 뒤 지인이 ㄱ경장의 피시(PC) 하드디스크 등 부품을 쓰레기장에 버린 것으로 확인됐다. 포렌식을 거쳐 여러 영상이 저장된 흔적을 발견했지만, 일부는 지워진 상태였다. 경찰은 ㄱ경장에게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다. 검찰은 <한겨레> 취재가 시작되자 규정 미비라며 관련 규정을 손보겠다고 밝혔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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