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통역 등 서비스가 없어 정보 이용 차별을 받고 있다며 대형 온라인 쇼핑몰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한 시각장애인들이 2심에서 일부 승소를 거둔 8일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총장(왼쪽)과 이삼희 한국디지털접근성진흥원 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 온라인 쇼핑몰 운영사들이 시각장애인들의 이용을 돕기 위해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는 항소심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거듭 ‘들을 수 있는 대체텍스트를 제공하라’고 명령했지만, 쇼핑몰들은 여전히 충분한 개선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 2017년 소송이 제기된 이후 실질적 변화 없이 소송만 길어지고 있다.
8일 서울고법 민사16부(재판장 김인겸)는 ‘온라인 쇼핑몰들이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지 않아 상품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차별을 겪고 있다’며 임아무개씨 등 1·2급 시각장애인 963명이 에스에스지(SSG)닷컴·이베이코리아(G마켓)·롯데쇼핑을 상대로 각각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 6개월 이내에 시각장애인 정보통신보조공학기기인 화면낭독기(스크린리더·문자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기)를 통해 들을 수 있게 하는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라”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다만, 1인당 10만원씩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은 취소했다.
재판부는 온라인 쇼핑몰의 차별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차별에 고의는 없어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온라인 쇼핑몰들의 접근성 향상을 위한 노력의 내용과 정도, 이미지 사용의 빈도와 비중이 높은 온라인 쇼핑몰의 특성, 이 사건 웹사이트에 상품을 직접 등록하는 협력업체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업계의 현실, 이미지를 텍스트로 구현할 수 있는 현재의 기술 수준 등을 고려하면 차별 행위가 쇼핑몰들의 고의·과실에 의한 것이라고까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어 재판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그 시행령에서는 ‘접근성이 보장된 웹사이트를’ 제공할 것을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선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다”며 “관련 선례나 학설, 판례도 하나로 통일된 게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2심 판결 뒤 소송을 제기한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총장은 기자들을 만나 “재판부가 장애인 차별 문제를 받아들이는 시각이 여전히 보수화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 사무총장은 이어 “재판부는 쇼핑몰에 접근성 개선을 권고하는데, 실질적으로 재판하는 7년 동안 시각장애인이 체감할 만한 변화가 없는 상태다. 6개월 내에 (온라인쇼핑몰이 개선 조처를)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며 “(만약) 할 수 있다면 그동안 기업들이 시각장애인을 상대로 사기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해당 쇼핑몰들에선 여전히 일부 상품 정보가 대체텍스트로 제공되지 않고 있다.
해당 사건 법률대리를 맡은 김재환 변호사는 “손해배상액을 취소한 건 소송지연행위를 조장하는 판단”이라며 “의뢰인들과 검토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장애인들의 접근권 관련 소송은 계속되고 있지만, 대부분 재판만 길어지고 시정조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서 지난 2021년 11월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설범식)는 시각·청각 장애인 4명이 씨지브이(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를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소송에서 “300석 이상의 좌석 수를 가진 상영관 등 일부 상영관에서 총 상영 횟수의 3%에 해당하는 횟수로 ‘배리어프리’(장애인의 사회생활을 막는 물리적·심리적 장애물 제거)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양쪽 모두 상고한 상태다. 이 소송은 지난 2016년 제기됐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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