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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한국전쟁 발발 전후 학살 등 중대한 피해를 초래한 북한 정권에게 사과를 촉구해야 한다.”

앞으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적대세력(인민군, 지방좌익, 빨치산)에 의한 학살 피해자 관련 진실규명 보고서를 낼 때 이러한 문구가 보고서에 담기게 된다. 진실화해위 안팎에서는 “위원회 설립취지엔 전혀 관심 없는 위원장이 6.25 기념일을 앞두고 보수층에 자기 치적을 어필하려는 것 같다. 적대세력 피해자들을 위한 실질 효과가 전혀 없는 권고문으로 불필요한 이념논쟁을 만들어 시간을 허비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진실화해위는 21일 오후 57차 전체위원회를 열고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권고 표준문안을 토의한 끝에 ‘북한 정권에 대한 사과 촉구’ 권고문을 넣기로 결정했다. 야당 추천 위원들은 모두 반대했다. 애초 진실화해위는 권고문에 ‘국가는 북한에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을 촉구해야 한다’는 내용도 넣으려 했으나, 최종 논의과정에서 빠졌다. 야당 추천 이상희 위원이 “보상이란 ‘법률적으로 적법한 행위를 했을 때의 피해구제’를 의미하는데 북한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따졌고, 여당 추천 차기환 의원도 보상이 적절한 용어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며 배상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권고안이 최소한의 법률적 검토조차 거치지 않은 점을 의식했는지 이후 김광동 위원장도 ‘보상 촉구’ 부분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과든 보상이든 피해자들을 위한 섬세하고 구체적인 전개 과정은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불필요한 권고문이라는 게 야당 추천 위원들의 의견이다. 기존 보고서에는 한국 정부에 ‘국가의 사과와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 추모사업 지원, 역사기록 반영’ 등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가의 사과는 실제 법원의 보상 판결로 이어질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어 피해자들에게는 북한에 대한 사과 촉구보다 실효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북한에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는 권고 문안은 김광동 위원장이 한국전쟁 사건을 총괄하는 1소위 위원장을 맡던 시절부터 제기해온 문제였다. ‘적대 세력에 의해 피해를 입었는데 왜 한국 정부가 사과해야 하냐’는 논리다.

이날 전체위원회는 이 권고 문안을 놓고 1시간 동안 논쟁을 벌였다. 이상희 위원은 “적대세력에 의해서 희생당한 피해자와 유족들을 위한다면 알맹이 없는 사과와 보상 요구보다 우리 공동체가 이들의 피해를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면서 “북한에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면 국회가 배·보상법을 만들려고 하겠나. 한국 정부 책임을 북한에 떠넘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 외 “지방좌익이나 빨치산은 대한민국 국민이었는데 북한에 따질 수 있겠냐”, “베트남 하미 학살 조사 건을 외교·국방문제라 하여 각하했는데 이 문제야말로 외교·국방 문제”, “북한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면 북한은 미군 폭격이나 한국군의 학살을 제기하지 않겠냐”등 야당 추천 위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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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추천 위원들은 “지방 좌익 빨치산의 행위는 모두 인민군 점령상태에서 벌어진 일”, “사과·배상은 물론 계급투쟁의 허구성에 대해 교육하는 권고안도 추가돼야 한다”, “보상은 포괄적 개념으로 보상 촉구도 해야 맞다.”, “국가가 이걸 보상하면 구상권 문제가 생긴다”면서 북한 정부에 대한 사과와 보상(또는 배상) 촉구 권고안을 찬성하는 편에 섰다.

<한겨레>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등에게 가족을 잃은 유족 2명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권이명(77)씨는 1950년 8월 지방 좌익으로 추정되는 이들에 의해 경기도 양주 회천면의 집이 불붙어 어머니 이영자(당시 24살)씨와 3살이던 남동생을 잃었다. 큰아버지가 면사무소에 근무하다 보니 공무원 집안으로 찍혔다고 했다. 그는 진실화해위 1소위에서 애초 추진한 사과·보상 촉구 권고안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국가의 책임을 왜 북한에 미루는가. 진실화해위가 정신이 나간 것 같다.” 강봉관(74)씨는 아버지 강복동(당시 21살)씨가 1950년 10월 전남 장흥의 지서에서 보초를 서다 인민군의 습격을 받아 숨졌다. 강씨는 “북한에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건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