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 관계에 있던 직원이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별다른 구호조치를 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토연구원 전 부원장에게 징역 8년이 확정됐다.
29일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ㄱ(60)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국토연구원 전 부원장이던 ㄱ씨는 2013년부터 같은 연구원에서 근무하는 ㄴ(당시 44살)씨와 내연관계를 시작했다. 2019년 8월16일 두 사람은 세종시 숙소에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이날 밤 11시께 ㄴ씨에게 갑자기 뇌출혈 증상이 발생했고, ㄱ씨는 화장실에서 심하게 구토를 한 ㄴ씨를 발견했다. 하지만 ㄱ씨는 내연관계가 들통나 사회적 지위가 실추되고 가족 관계도 파탄 날 것을 우려해, 119에 신고하거나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ㄱ씨는 새벽 2시께 ㄴ씨를 밖으로 데려나온 뒤 4시간 넘게 차량에 방치했다. ㄴ씨를 승용차로 옮기는 과정에 ㄴ씨를 바닥에 질질 끌고 승용차 안으로 던지듯 밀어넣어 상태가 더 악화되기도 했다. 새벽 6시께 ㄱ씨는 ㄴ씨를 뒤늦게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이미 숨진 상태였다.
1심 법원은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ㄱ씨가 구호조치를 게을리해 ㄴ씨가 숨졌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이었다. ㄴ씨의 뇌출혈 증상이 급격하게 악화해 곧바로 병원에 가도 생존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도 들었다. 그러나 2심은 ㄱ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ㄴ씨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온 시점 기준 생존확률이 10~20%인데, 이는 낮은 생존확률이 아니라는 전문가 의견이 ‘구호조치 미이행과 ㄴ씨 죽음’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주요 근거가 됐다. 2심 재판부는 구조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ㄴ씨를 사망하도록 내버려두려는 의사가 없었더라도,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ㄱ씨가 인식해 미필적 살해 고의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 역시 법리 오해가 없다며 원심(2심)을 확정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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