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에 ‘실제 주소지’가 적혀 있었지만, 주민등록상 주소로만 소송 서류를 보내고 피고인의 출석 없이 재판을 진행해 판결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재판관)는 사기 혐의로 ㄱ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ㄱ씨는 도박 자금으로 쓰려고 2020년 3월 담뱃가게 주인에게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쳐서 돌려주겠다”고 속여 700만원을 받은 데 이어 “금괴를 절반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며 가짜 금괴 사진을 보여주며 3600만원을 추가로 뜯어낸 혐의(사기)로 기소됐다.
ㄱ씨의 출석 없이 ‘공시송달’로 진행된 1심은 징역 8개월을 선고하고 3000만원 배상명령을 내렸다. 공시송달이란 상대방의 주소를 알 수 없을 때 법원이 공소장이나 소송기록접수통지서 등의 서류를 법원 게시판, 관보 또는 신문에 게재하는 것을 말한다. ㄱ씨는 1심 판결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상소권 회복을 청구하고 항소했다. 2심도 ㄱ씨의 주민등록상 주소로 소송에 필요한 서류를 보냈지만 ㄱ씨는 또다시 서류를 받지 않았다. 검찰은 주민센터에서 ㄱ씨의 주소를 확인했지만, 주소는 그대로였다. 2심 재판부는 경찰에 확인 요청했는데, “이 주소에 사는 아버지로부터 ㄱ씨를 10년 동안 보지 못했고 연락도 하지 못했다는 진술을 들었다”는 회신이 왔다. 이에 따라 2심은 다시 공시송달로 재판했고 1심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구속된 ㄱ씨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원심(2심)을 깨고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공소장에 ㄱ씨의 주민등록상 주소 외에 ‘실제 거주지’의 주소가 적혀있다는 점에 대법원은 주목했다. ㄱ씨는 이곳에서 체포된 적도 있고 ㄱ씨가 작성한 각서에도 실제 거주지의 주소가 기재돼 있었다.
대법원은 “원심은 공시송달 결정을 하기 전에 소재를 찾아 서류를 받을 장소를 확인하는 등 조처를 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 주거지를 알 수 없다고 단정해 ㄱ씨의 진술 없이 판결했고 이는 ㄱ씨에게 출석의 기회를 주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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