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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별 기재’ 요구하는 한국사 답안지…성소수자 학생들 인권위 진정

등록 2023-07-11 14:57수정 2023-07-11 17:35

11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청소년 성소수자 8명과 함께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차별 집단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트랜스젠더 학생을 배제하고 학생의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오엠아르(OMR) 성별표기는 차별이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1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청소년 성소수자 8명과 함께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차별 집단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트랜스젠더 학생을 배제하고 학생의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오엠아르(OMR) 성별표기는 차별이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3월, 고교 입학 후 첫 전국연합합력평가를 본 ㄱ(16)씨는 4교시 한국사 영역 오엠아르(OMR) 답안지를 보고 당황했다. 앞서 치렀던 국어·수학·영어 영역 답안지엔 없던 ‘성별’ 기재란이 한국사 영역 답안지에 있었던 것이다. 감독관은 학생들에게 “남고(남자고등학교)니까 성별 표기란에 모두 ‘남’으로 표시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반 학생이 “선생님, ‘여’로 표시하면 어떻게 돼요?”라고 물었다. 감독관은 “정 궁금하면 한 번 해보라”고 답했다. 그 말에 반 전체가 웃었지만, ㄱ씨는 웃을 수 없었다.

ㄱ씨는 남성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의 성별 정체성을 가진 트랜스여성이기 때문이었다. ㄱ씨는 “시험 문제보다 성별 표기를 어떻게 해야할지 신경이 더 쓰였다”며 “(내 정체성대로) ‘여’로 표기하고 싶었지만, 이를 빌미로 선생님께 불려가는 등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ㄱ씨는 결국 성별 기재란을 공란으로 두고 답안지를 제출했다. 성별 이분법이 여전히 공고한 사회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학생들이 일부 시험에서 요구하는 이분법적 성별 표기로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11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청소년 성소수자 8명과 함께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차별 집단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트랜스젠더 학생을 배제하고 학생의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오엠아르(OMR) 성별표기는 차별이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1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청소년 성소수자 8명과 함께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차별 집단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트랜스젠더 학생을 배제하고 학생의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오엠아르(OMR) 성별표기는 차별이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ㄱ씨를 비롯한 일부 학생들이 오엠아르 답안지에 응시자의 성별을 표기하도록 한 것은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차별이라며 11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 인권단체들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엠아르 성별 표기는 차별”이라며 진정 취지를 설명했다. 청소년 성소수자 8명이 진정인으로 참여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주관하는 수능시험 모의평가와 서울·경기 등 일부 시·도 교육청이 출제하는 전국연합학력평가는 4교시 한국사 영역에서 응시생들로 하여금 오엠아르 답안지에 성별을 여성과 남성 중 하나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평가원은 “응시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생년월일, 성명 외 성별 정보도 개인 식별정보로서 수집하고 있다”며 “채점 결과를 발표할 때 수험정보 제공 차원에서 성별로 나뉜 도수분포 자료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여자대학에 진학하려는 여학생들에게는 성별로 구분된 도수분포 자료가 진학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진정인들은 응시생 수험번호와 성명, 생년월일만으로도 개인 식별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응시자의 성별 정보 수집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장서연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진정인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성별로 성별 기재를 강요당하거나, 성적 결과표에 성별이 표시되는 경험을 통해 다른 응시자들과 달리 시험을 치르기 전부터 혼란과 우울, 사기 저하 등의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게 된다”며 “이는 평등권을 명백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단체들은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들은 애써 공부한 결과를 정당하게 받지 못할 위험과, 아우팅(타인에 의해 성 정체성이 강제로 공개되는 것)의 위험을 모두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오엠아르 답안지를 아예 비워둘 수도 없다”며 오엠아르 답안지의 성별 기재란 삭제를 요구했다. 아울러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오엠아르 표기를 통해 성별 정보를 수집하거나 성적표에 성별 항목을 표기하지 않는 정책을 추진할 것을 교육부에 촉구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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