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는 무연고 시신을 10년간 봉안할뿐 아니라 훼손·분실하지 않도록 ‘관리할 의무’가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ㄱ씨가 경기 양주시를 상대로 낸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고 18일 밝혔다.
ㄱ씨의 형인 ㄴ씨는 양주시 관할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던 중 2011년 12월 사망했다. 이듬해 3월 양주시는 ㄴ씨를 무연고자로 처리해 장례를 치른 후 공설묘지에 묻었다. 2017년 7월 ㄱ씨는 형의 시신을 이장하려고 했으나 ㄴ씨 무덤은 훼손됐고 표지판도 사라진 상태였다. 유골도 찾을 수 없었다. 양주시가 무덤 훼손이나 유골 분실을 방지할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ㄱ씨는 정신적 손해배상금을 달라고 했다.
1·2심은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양주시에 무덤 훼손이나 유골 분실을 방지할 법률상 주의 의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법원은 ㄱ씨의 손을 들어주며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그 시행령은 시장 등에게 관할 구역 내 무연고 시신을 매장·화장해 10년간 봉안하도록 규정한다. 대법원은 이 법에서 정한 시의 의무는 “연고자가 공고를 통해 사망한 무연고자의 소재를 확인한 뒤 시체를 인수해 적절한 예우를 할 수 있도록, 시체를 관리할 의무까지 당연히 포함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또 “시장 등에게 무연고 시체 등에 관한 처리 의무를 법령으로 상세히 부과한 것은 사망한 무연고자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장사법에서 정한 법령상 의무는 시장 등에게 10년 동안 분묘가 훼손되거나 망인의 유골이 분실되는 것을 방지하면서 이를 합리적 의무까지 부담시킨 것임을 최초로 설시했다”고 판결 의의를 밝혔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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