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사는 대학생 박아무개(27)씨는 최근 100만원 상당의 명품 브랜드 의류를 구입해 1~2회 착용한 뒤 중고거래 플랫폼에 되팔기를 반복하고 있다. 박씨는 20일 <한겨레>에 “구하기 힘든 사이즈의 경우에는 ‘희귀템’이 돼, 오히려 더 비싼 가격에 팔기도 한다”며 “그 돈으로 다시 원하는 명품 옷을 산다”고 말했다. 쇼핑백과 상품 태그 여부도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에 챙겨서 보관하는 편이다. 박씨는 이를 “원하는 물건을 공짜로 갖는 법”이라고 여긴다.
박씨만 유별난 것은 아니다. 소비 여력이 적은 20대를 중심으로 “사치 부리면서 절약도 할 수 있는 역대급 재테크 방법”이라며 이런 방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지난 3월 구독자 6천여명을 보유한 22살의 한 유튜버는 ‘일단 사고 되파는 방법’을 영상으로 소개했다. 그는 영상에서 “핵심은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브랜드의 상품을 구매한 가격 그대로 판매하는 것이다. 해당 상품을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중고마켓을 통해 원가로 구매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기성세대 관점에서 이해하기 쉬운 소비 행태는 아니다. 온라인에 ‘인증샷’만 남기면, 사실상 주변으로부터 구매 사실을 인증받은 것이라는 에스엔에스(SNS) 문화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물건을 영구히 소유하지 않더라도, 산 뒤 한두 차례 사용하고 사진을 올리는 것만으로 이미 ‘소유했다’는 만족감을 느끼는 셈이다.
최근 취업한 직장인 오아무개(27)씨도 70~80만원에 달하는 애플 ‘에어팟 맥스 헤드셋’을 구매한 뒤 고스란히 반품했다. 다만 헤드셋이 담긴 상자 사진과 자신이 착용한 사진을 각각 에스엔에스에 올린 뒤였다. 오씨는 “유행 중인 ‘에어팟 맥스 헤드셋 착용컷’을 찍기 위해 구매했다”며 “헤드셋을 70만원 이상 주고 사는 것은 부담되지만 사진을 찍고 에스엔에스 업로드는 하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에스엔에스와 떨어질 수 없는 세대가 주머니가 가벼운 현실과 타협한 ‘합리적 소비’가 곧 ‘명품 되팔기’라는 얘기가 된다.
실제 인크루트가 지난 2월27일부터 3월1일까지 대학생·구직자·직장인 등 924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명품과 같은 고가의 서비스를 찾는 원인으로 ‘에스엔에스로 과시, 모방소비 증가’(35.3%)라는 답변을 가장 많이 꼽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가장 빈곤한 세대가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현재의 사회적 가치를 소유하려는 분투로 해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학)는 “많은 물건을 소유하길 원하지만, 가장 돈이 없는 세대다 보니 사고팔고를 반복하며 소유의 기쁨을 얻고 이를 과시한 뒤 효용이 끝나면 다시 물건을 팔아버리는 방식의 소비 형태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김우리사랑 교육연수생 sook9643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