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90)씨가 이웃인 ㄴ(56)씨의 집으로 가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이들은 지난 4월 오전 9시께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 상가 자판기 앞에서 마주쳤다. ㄴ씨는 ㄱ씨에게 “몸에 좋은 약이 있으니까 집으로 가자”고 권했다. 1년여 전부터 같은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았기에, ㄴ씨가 해를 가할 거라고 의심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친분’은 순식간에 ‘범죄’로 변했다. ㄴ씨가 집에서 ㄱ씨에게 건넨 약은 ‘몸에 좋은 약’이 아닌 신경안정제였다. ㄱ씨 가족의 실종 신고로 오후 5시께 경찰이 ㄴ씨의 집을 찾았을 땐 이미 성폭행이 일어난 뒤였다. ㄱ씨는 사건 후 식칼을 옆에 두고 자야 할 정도로 두려움에 떨었다. 항우울제 약을 복용하기도 했다.
지난달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정진아)는 간음유인·강간상해죄 등으로 기소된 ㄴ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ㄱ씨)가 사건 후 기력이 쇠해지고 예전처럼 잘 걷지 못하게 됐다. 피해자 연령을 고려하면 피해 정도가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ㄴ씨는 항소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전체 범죄는 줄었지만 노인 대상 범죄는 늘고 있다. 특히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증가세가 눈에 띈다. 2일 경찰청 자료를 보면 전체 발생 범죄는 2017년 166만2341건에서 2021년 142만9826건으로 14% 줄었는데, 같은 기간 61살 이상 노인 대상 범죄는 14만5485건에서 16만488건으로 10% 증가했다. 특히 강간 등 성범죄만 보면 2017년 657건에서 2021년 791건으로 20%(134건)나 늘었다.
혼자 사는 노인이 자신을 도와주던 복지시설 직원에게 성추행당한 사례도 있다. 2020년 11월 대전의 한 주간보호센터에서 장애노인의 출퇴근을 도와주는 60대 ㄷ씨는 중증도 치매 증세가 있는 71살 ㄹ씨를 강제추행했다. 대전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박헌행)는 “복지시설은 피해자와 같은 장애노인을 주간에 돌보아 줄 수 없는 가족들이 전적으로 신뢰하고 맡기는 곳인데, 피고인(ㄷ씨)은 신뢰를 깨트리고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방어할 능력이 없는 피해자를 강제추행했다”며 ㄷ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전문가들은 노인이 성범죄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노인대상 복지서비스 체계를 재점검하고, 범죄 피해 예방교육 등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고령화로 독거노인이 늘고 과거보다 노인의 신체기능이 좋아지면서 노인이 노인을 타깃으로 한 성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며 “공공임대주택, 노인장기요양보험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에서 나아가 안전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용호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고령화로 돌봄종사자들의 연령 또한 함께 올라가면서 노노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며 “노인보호 전문기관에서 돌봄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노인학대 예방 교육 등을 의무화하고, 경찰이나 지자체에서도 노인학대 신고가 들어왔을 때 증거를 적극적으로 찾는 등 초동 대응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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